"오감 넘어 육감 자극 공연"…최재혁·주정현의 '원초적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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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7월 14일, 오전 05:35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쉼표와 무음(無音) 없이 가능한 많은 소리를 연주해 풍부한 질감을 만들어라’

연주자가 참고해야 할 악보에 음표는 없고 이런 지시문만 적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대다수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스위스 작곡가 제시 콕스(Jessie Cox)가 쓴 곡 ‘퀀티파이’(Quantify) 악보에 실제로 써있는 지시문이다. 1994년생 동갑내기 작곡가인 주정현과 최재혁도 처음엔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즉흥적인 연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합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해금 연주자 주정현(왼쪽)과 현대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사진=세종문화회관).
두 사람이 지시문을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한 무대는 오는 18~19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원초적 기쁨’(Primitive Happiness)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계 없는 무대, 한계 없는 시도’를 주제로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선보이는 세종문화회관의 기획 프로그램인 ‘싱크 넥스트 25’(Sync Next 25)의 일환이다.

지난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주정현과 최재혁은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스릴이 있었다”며 그간의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나이는 같지만, 활동 분야로 보자면 ‘물과 기름’ 같다. 최재혁은 클래식을, 주정현은 국악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최재혁은 2017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음악가로, 현대음악 단체인 ’앙상블 블랭크‘를 이끌고 있다. 서울과 LA에서 연주자이자 창작자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주정현은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첫 협업인 이번 공연에서 두 사람은 총 6곡을 선보인다. 주정현은 “우리 스타일을 고르게 볼 수 있는 무대로 구성했다”며 “서로가 만났을 때 융합되거나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들은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을 주는 현대음악이다.

예컨대 주정현이 앙상블 블랭크를 위해 새로 작곡한 ‘원초적 기쁨’에선 전동 칫솔과 진공청소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는 “음악이란 건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리”라면서 “연주자의 신체가 악기와 온갖 방법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퀀티파이’는 최재혁의 지휘 아래 주정현이 해금을 연주하고 앙상블 블랭크가 참여하는 초연 곡이다. 특히 연주자들이 악보의 지시문에 따라 즉흥적으로 음향을 채우는 무대다. 최재혁은 “음표가 없는 악보는 연주자에게 자율성을 주는 반면, 굉장한 믿음도 필요하다”며 “연주자들의 개별 역량과 해석, 테크닉이 드러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대 디자인도 독특하다. 작은 삼각형 무대와 큰 삼각형 무대를 마주 보게 배치하고, 관객들은 그 사이에서 음악을 듣는다. 주정현은 “눈과 귀를 모두 열어놓고 보는 즐거움이 있는 무대”라고 언급했다. 최재혁은 “한마디로 오감을 넘어 육감을 깨우치는 공연”이라고 부연했다.

현대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왼쪽)과 해금 연주자 주정현(사진=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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