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스펙타클이 된 사회...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오늘의 책)

생활/문화

MHN스포츠,

2025년 7월 14일, 오전 06:00

(MHN 이나영 인턴 기자) 오래도록 주목할 만한 도서로 수전 손택의 철학서 '타인의 고통'을 소개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이라고 불리는 수전 손택은 1933년 뉴욕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나 에세이스트, 소설가, 평론, 감독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지식인. 1966년 그가 발표한 초기 대표작 '해석에 반대한다'는 문단에 돌풍을 일으키며 손택에게 '지성계의 여왕,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라는 수식을 붙여주었다.

'작가란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는 말을 실현하듯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수전 손택은 1993년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고, 2003년 미국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등 지식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2004년 향년 71세로 타계했다.

사망 1년 전에 출간된 '타인의 고통'에서 손택은 전쟁 보도 사진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타클로 소비하는 이미지 과잉의 사회를 응시한다.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은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평과 함께 '타인의 고통'에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여했다. 국내에서는 절판되었지만 꾸준히 읽히는 현대의 고전이며, tnN '요즘 책방:책 읽어드립니다'에 소개되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이재원 옮김|이후

12살 서점에서 우연히 유태인 수용소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수전 손택은 책 '사진에 대하여'를 거치며 이미지 과잉의 현대 문명에서 사진의 역할과 소비에 관해 진단해왔다. '타인의 고통'은 그 연장선에 있지만 손택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다.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입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언제, 어디에서나 재앙의 이미지를 만날 수 있게 했다. 소파 위에서, 침대 위에서 손쉽게 타인의 고통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 ▶“스페인 내전(1936∼39)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지켜본 (‘보도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선, 폭격을 받고 있는 마을에서 일군의 전문 사진작가들이 찍은 사진들은 스페인이나 해외의 각종 신문과 잡지에 곧장 실리곤 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매일같이 보여준 최초의 전쟁, 즉 미국이 개시한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머나먼 곳을 상세히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통해서 죽음과 파괴의 모습이 가정의 코앞에까지 찾아들어 왔다.” 다만 이것은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는 능력의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손택이 견지했던 궁금증은 다음과 같다. ▶“시청자들은 잔인하게 묘사된 폭력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현실 인식이 손상된 걸까?” 긴 족보를 가진 고통의 도상학을 따라가는 손택은 전쟁 사진들을 추적하면서 고통을 미학화하거나 식민주의가 잔재하는 이미지들을 발견하고 비판한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포토리얼리즘은 꽃을 피웠다. 손택은 말한다. ▶"사진 없는 전쟁, 즉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의 재현은 교훈이나 본보기가 아닌 일종의 포르노그라피로 소비되고 이미지를 보는 행위는 일종의 관음증에 필적하게 되었다. ▶“좀더 극적인 이미지들을 찾아 나서려는 충동이 사진 산업을 등장시켰으며, 사진 산업은 곧 충격이 소비를 자극하는 주된 요소이자 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게 된 문화의 일부가 됐다.”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린다.”

타인의 고통이 스펙타클이 된 사회. 사진은 일견 객관적 기록이라고 간주되지만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양산되면 사람들은 이런 고통 자체에 무감각해진다.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종류의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인 것. 우리가 전쟁의 사진으로부터 확인하는 것은 나는 그곳에 속하지 않았다는 안온한 거리감이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타인의 고통은 연민이 아니라 연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연민에 휘둘리지 않고, 프레임 바깥을 보는 것. 손택은 이전 저서에서 언급한 '투명성'의 개념을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는 태도로 부른다. 있는 그대로 볼 것, 이미지의 재현 방식을 문제 삼을 것.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프레임화된 이미지 앞에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무의식적인 관성을, 미디어의 작동 방식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도서. 타인의 고통 앞에서 결국 우리는 어떤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을 안고 있는 고전이다.

사진=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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