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 故 김민기 1주기…“그는 끝까지 ‘뒷것’이었다”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5년 7월 21일, 오전 07:04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난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

가수 김민기는 무대에 오르는 이들을 ‘앞것’이라 불렀다. 배우를 ‘(무대) 앞것’으로, 자신을 ‘뒷것’이라 표현하며 묵묵히 비빌 언덕이 되어준 사람. 자신이 관심 받기보다 그들이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그는 뒤로, 더 멀찌감치 물러났다.

7월 21일은 가수이자 극단 학전(學田) 대표였던 고(故) 김민기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고인의 뜻에 따라 대학로 소극장 학전 자리에는 어린이·청소년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이 들어섰고, 별도의 추모 공연이나 행사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가수이자 극단 학전(學田) 대표였던 고(故) 김민기(사진=학전 제공).
김민기가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나면서 그와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고 추억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그를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불렀다.

김민기가 자신의 사람들을 챙긴 곳은 대학로 문화의 상징인 소극장 학전(현 아르코꿈밭극장)이다. 그는 4장의 앨범으로 구성한 ‘김민기 전집’을 내놓으며 받은 선불금으로 1991년 180석 규모의 학전을 열었다. 1990년대 초 모든 가수에게 ‘꿈의 무대’로 통했던 학전에서는 들국화, 이소라, 조규찬, 노찾사, 권진원, 박학기, 강산에, 장필순, 윤도현 등의 무대가 됐고, 고 김광석은 당시 ‘1000회 공연’을 펼쳐내 최고 스타가 됐다.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서도 수많은 예술인을 길러냈다. 학전 1기생인 설경구는 ‘지하철 1호선’ 초연 배우로 활동하며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과 함께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연출가로 인생의 제2막을 열기 전 그는 시대를 이끈 가수였다.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학과 입학한 그는 동문 김영세와 함께 2인조 밴드 ‘도비두’를 결성하며 가요계에 본격 발을 들였다. 특히 시대를 담은 시적인 노랫말, 담백한 멜로디, 철학적인 메시지 등으로 청춘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아침이슬’ ‘상록수’ ‘작은 연못’ ‘백구’ ‘봉우리’ 등 이전에는 한국에 없던 노래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1975년 유신 반대 시위 때 ‘아침이슬’을 불러 ‘대학생들에게 불온한 사상’을 심어줬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노래가 금지곡이 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광장에서, 대학가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울려 퍼졌다. 그의 노래는 세월이 흘러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 집회 현장에서도 불려졌다.

극단 학전은 공식 추모 행사를 열지 않는 대신 고인이 만 20세에 발매한 데뷔앨범 ‘김민기’를 LP로 복각해 재발매하고, 연내 ‘학전김민기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번 작업은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을 수 있는 아카이빙이면 된다”던 고인의 바람을 이뤄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 앨범이 LP로 정식 재발매되는 것은 54년 만이다.

복원 LP에는 대표곡 ‘아침이슬’을 비롯해 ‘그날’ ‘꽃 피우는 아이’ 등 10곡이 수록된다. 1971년 정부의 심의를 거쳐 ‘종이연’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곡은 원제인 ‘혼혈아’로 담긴다. LP는 7월21일부터 8월10일까지 3주 동안 주요 온라인 음반 사이트에서 예약 주문이 가능하다. 11월 이후 예약자에게 순차적으로 배송될 예정이다.

학전은 “복각 LP는 그의 음악적 유산을 재정리하는 아카이브 작업의 출발점으로서 의미를 가진다”면서 “고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왜곡과 질곡의 시간을 겪어낸 이 앨범이 오롯이 음악 그 자체로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전은 고인의 삶과 작업을 미화나 과장없이 올곧게 기록하기 위해 ‘학전김민기재단’을 연내 설립할 계획도 밝혔다. 학전은 “고인이 일생에 걸쳐 남긴 작품과 작업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통해 그의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재단은 고인의 작품과 작업을 기록하고, 후세에도 그의 정신과 문화적 유산이 이어지도록 잘 보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올해 내 설립을 목표로 준비위원회가 구성된다.

김민기는 배우에겐 무대를, 광장의 시민들에겐 노래를 선물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뒷것 인생’을 산 김민기는 죽어서도 ‘뒷것’의 길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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