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같은 인사를 건넨다. 바뀌는 건 배우의 이름 뿐이다. 8명의 배우는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고, 연령대도 다양하며 심지어 외국인 배우도 있다. 이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1890년 미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의료 선교사 로제타의 삶과 철학을 들려준다. 각기 다른 로제타들이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이질감은 사라지고 8인 8색의 매력에 몰입하게 된다.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선보이는 연극 ‘로제타’가 오는 31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한국 근대 의료와 교육을 개척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삶과 철학을 그린 작품이다. 타국으로 온 로제타가 국적·언어·계층·성별 등 시대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며 의료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헌신한 내용을 담고 있다. 1894년 국내 최초의 맹아학교인 ‘평양여맹학교’와 여성 치료소 ‘광혜여원’을 개소하는 등 한국 근대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로제타’의 일기장을 따라 그녀의 사랑과 고통, 신념과 희생의 여정을 되짚는다.
2023년 미국 실험주의 극단 ‘리빙 시어터(The Living Theatre)’가 처음 내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옐로밤·극공작소 마방진과 함께 만든 아시아 협력 작품으로 초연됐다. 당시 무대 위 8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로제타’를 연기하는 앙상블 형식의 실험극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얻은 바 있다. 한국과 미국 배우들이 번갈아 ‘로제타’를 연기하는 것은 “모든 배우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리빙 시어터의 철학을 담은 연출이다.
이번 공연에는 배우 김성령이 새롭게 합류했다. ‘미저리’ 이후 6년 만의 무대 복귀작이다. 배우 고인배, 견민성, 원경식, 이경구, 김하리를 비롯해 ‘리빙 시어터’의 브래드 버지스, 엠마 수 해리스 등 초연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도 함께한다.

연극 ‘로제타’(사진=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화상을 입은 아이에게 자신의 피부를 떼어 이식 수술을 감행하는 모습은 여운을 남긴다. 남편 윌리엄 홀이 평양에서 선교를 하던 중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는 장면에서는 7명의 배우들이 윌리엄을 천천히 에워싸면서 병마가 덮쳐오는 순간의 공포감을 객석에 전한다.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던 로제타의 둘째 딸 에디스가 풍토병으로 사망하는 장면에선 관객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도 환자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의로운 삶은 영리한 연출과 어우러져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이후 9월 5일과 6일에는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후 일본 돗토리현에서 열리는 베세토 페스티벌 초청작으로 선정돼 9월 27~28일 일본 도리긴문화관 무대에 오른다.

연극 ‘로제타’에 새롭게 합류한 김성령(사진=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