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동북아역사문화재단 '한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일본 사비에르고 학생들이 후쿠오카 공항에서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본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일본 현지에 남아 있는 한국 역사의 흔적을 체험하는 3박 4일 역사 탐빙길에 나섰다.
18일, 탐방 첫날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사비에르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들은 인사를 나눈 후 버스에 올라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 역사 탐방은 동북아역사재단이 히스토리D와 함께 마련한 한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일제강점기와 근대사의 아픔이 서린 현장을 양국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 일그러진 양국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려는 의미 있는 여정이다.
이번 동북아 역사문화 교류의 진행을 맡은 이신철 히스토리D 총괄이사는 시모노세키가 속한 야마구치현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 등 역대 일본 총리를 9명이나 배출할 정도로 일본의 근현대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던 지역이다. 그만큼 한국의 역사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18일 동북아역사문화재단 '한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일본 사비에르고 학생들이 재일대한기독교회고쿠라교회 영생원을 방문해 설립 취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념 촬영을 가졌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후쿠오카 공항에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재일대한기독교회고쿠라교회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조선인 강제 징용과 그로 인한 조선인들의 유골을 모시고 그들의 피해를 보여주는 전시장이 마련된 곳이다.
고쿠라교회는 재일 인권 운동가였던 최창화 초대 목사가 1927년 8월 설립했다. 이 교회는 한때 재일교포들의 지문 날인 거부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현재까지도 재일교포들의 인권 회복과 삶의 동반자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쿠라교회 김정자 장로는 최창화 목사가 납골당인 영생원의 설립한 연원을 들려줬다. 1973년 재일대한기독교회총회, 후쿠오카 대한민국총영사, 민단 동포, 고쿠라교회 신자 등의 지원을 받아 이곳을 설립한 후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 징집을 당한 당시 조선인들이 북규슈, 찌쿠호 지역의 탄광에 끌려와 일하다가 사망한 후 떠돌던 유골 157기를 찾아내 안치했다는 설명이다.
학생들은 진지한 자세로 김 장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어서 강제 징용자와 일본군 위안부들의 사진을 소개하는 전시도 둘러봤다.

18일 동북아역사문화재단 '한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일본 사비에르고 학생들이 재일대한기독교회고쿠라교회 영생원을 방문해 한국인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등을 보여주는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사비에르고의 미즈노 에마(16)는 "탄광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많은 한국인이 희생된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듣는다"며 "당시 일본이 나쁜 일을 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남성여고의 전혜원(16)은 "교과서에서 본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직접 보니 역사의 비극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며 "한국과 일본과 잘 지냈으면 좋겠지만, 과거를 외면하고 묻어두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고자 없는 유골은 여전히 많다. 수습된 유골은 유족이 판명되는 대로 송환될 예정이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일에는 국적이 따로 없었다. 한일 양국 학생들은 역사 속에서 잊혀서는 안 될 강제 징용의 아픈 현실을 저마다 가슴에 새겼다.
김정자 장로는 "이렇게 일본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함께 영생원을 찾아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며 "최창화 목사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져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1894년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조약 이 체결된 것을 기리는 청일강화기념관 내부 전경. © 뉴스1 김정한 기자
이어진 방문지는 1894년 일본이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청일강화기념관이다. 당시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 대표 리훙장이 마주 앉았던 이곳은 일본의 승리의 현장이다. 하지만 조선의 국권 상실 운명이 사실상 결정된 통한의 역사를 담은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고급 복어요리 전문점인 '슌판로' 옆에 위치한 이 기념관은 조약 체결 당시의 회의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유리창 너머로 재현된 회의실 풍경은 격변의 시대를 목도했던 조약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은 조선에 대한 일방적인 종주권 주장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가속화하는 발판이 됐다. 학생들은 기념관을 둘러보며 일본의 세계 열강으로의 부상과 한반도의 근대사를 뒤흔든 불평등 조약이라는 역사의 양면성을 되새겼다.
이어서 청일강화기념관 옆에 있는 아카마신궁도 둘러봤다. 1185년 설립된 이곳은 무사집단의 권력다툼 속에서 8세 나이로 바다에 빠져 죽은 안토쿠 천황을 기리는 신사다. 동시에 이곳은 500여 명의 대규모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방문할 때 숙소(객관)로 제공됐던 곳이기도 하다.

아카마신궁 건너편에 세워진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 © 뉴스1 김정한 기자
길 건너편에는 한일양국의 우정을 다짐하는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이 종결된 후 조선과 일본이 아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동북아 역사재단의 박한민 연구위원은 "대마도를 출발한 조선통신사 일행이 국교 재개 후 시모노세키 해안에 상륙한 것을 기리는 특별한 의미를 담은 기념비다"며 "이처럼 한국과 일본 양국은 무수한 갈등과 엇갈린 이해관계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포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한일 학생들의 역사탐방은 한국인 징용자들이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장생탄광 방문, 하기코엔고 학생들과의 수업 참가, 후쿠오카 일대 문화탐방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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