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한나래 인턴기자) 평범한 문화생활이 장벽으로 느껴지는 누군가를 위한 '배리어프리' 문화생활 사례를 소개한다.
어떤 문화생활을 경험할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바로 예매해서 떠나는 평범한 일상. 평범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내가 휠체어를 타거나, 시각-청각 장애가 있거나, 고령자라면 아무런 고려 없이 바로 참여할 수 있을까?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이런 측면에서 나온 개념이다. 배리어프리는 장애물(Barrier)과 벗어난다(Free)의 합성어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노인 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물리적-제도적 장애물이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문턱 없애기 정도의 좁은 의미였지만 지금은 정보 접근, 문화생활 등 사회 전반의 모든 장벽을 없애는 넓은 의미를 사용되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여러 배리어프리 영역 중에서도 문화생활 측면 사례를 살펴본다.
[스크린 장벽]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아시아' 색상 자막 도입
콘텐츠 접근에서 '감각적 장벽'을 허무는 시도다. 특히 청각장애인의 경우 소리 정보가 없이 자막만으로 콘텐츠를 접하면서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 비장애인 시청자도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콘텐츠에서 자막만으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넷플릭스는 오는 28일 오후 4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개 예정인 '피지컬: 아시아'에서 각 언어별 색상 자막을 도입한다. 이는 넷플릭스 한국 작품 중 최초 시도이다. 전 세계 이용자에게 새로운 몰입형 시청 경험을 제공하고자 자막에 색상을 적용해 발화자를 직관적으로 구분했다. 색상 자막은 한국어-영어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포함해 최대 33개 언어에 적용된다.
작품 내 지정된 팀별 색상과 동일한 컬러를 사용해, 시청자가 특정 언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자막의 색상만으로 발화자를 직관적으로 구분하고 대화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한국 참가자의 대사는 빨간색 배경 자막으로, 일본 참가자의 대사는 파란색 자막으로 표시되는 방식이다. 특히, 국제 웹 표준화 기구 W3C(The World Wide Web Consortium)의 접근성 가이드라인 기준도 충족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피지컬: 아시아'에 색상 자막을 도입해 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몰입감을 선사하고자 했다"라며, "넷플릭스는 앞으로도 모든 이용자가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접근성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피지컬: 아시아'는 아시아 8개국이 국기를 걸고 펼치는 피지컬 전쟁으로 한국, 일본, 태국, 몽골,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호주, 필리핀 각각 6인, 총 48인이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승부를 겨룬다.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이 열광할 스포츠 스타들이 집결하여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의 장이면서도 동시에 즐거운 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됐다.
한편, 넷플릭스는 기존 빠른 호흡의 예능 장르 특성에 맞춰 2인 내레이터 화면 해설 방식을 도입하거나,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개선하는 등 콘텐츠 접근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심리적 장벽] 연극 '경계인' 티켓 제공으로 루게릭 환우와 가족에게 희망 전달
문화생활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은 24시간의 간병에 매달리는 중증 환우 가족들에게는 특히 높게 다가온다. 물리적 한계 이전에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라는 심리적인 위축과 '아파서'는 이유만으로 문화적 경험에서 소외되기 쉽다.
이러한 고리를 끊고 환우와 함께 아픔을 이겨나가는 가족들에게도 동등한 문화 향유 기회 제공을 위해, 극단 달팽이주파수는 지난 16일 동승무대 소극장에서 승일희망재단과 함께 루게릭병 환우 가족들을 위한 특별한 문화 나눔을 진행했다. 극단은 100여 장의 티켓을 승일희망재단에 기부하며, 루게릭병환우 가족들을 공연장으로 초청해 현실적 장벽을 해소하고자 했다.
특히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소실돼 전신마비, 언어 기능 상실,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사망까지 이르는 병이다. 반면, 정신은 또렷해 '영혼이 육체에 갇히는 병'으로도 불린다. 중증 환우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해, 가족들 역시 간병 부담과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연극 '경계인'은 사물과 존재를 구분하는 공간적-존재적 '경계'와 옳고 그름을 나누는 도덕적 '경계'의 이중적 의미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경계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담아낸 작품이다.
작품은 공항, 강변, 노숙자 쉼터를 전전하는 부자(父子)의 일상을 통해 사회의 불합리와 소외, 그리고 인간의 고립을 그린다. 아버지는 점차 세상과 단절되어 가지만, 아들은 여전히 평범한 삶을 꿈꾸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극단적인 현실 속 서로를 향한 애틋한 시선과 허무한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의 모습으로 고통 속에서도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비춘다.
극단 달팽이주파수 관계자는 "경계인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버텨내고 있는 루게릭병 환우 가족들을 공연에 초대할 수 있어 뜻깊다."며 "잠시나마 웃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승일희망재단 역시 "문화예술을 통한 치유와 나눔은 환우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이번 협업을 계기로 다양한 문화 접근의 기회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연극 '경계인'은 오는 26일까지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기회의 장벽] 2025 원로예술지원사업 공간연계 기획사업 '마스터피스 토크' 개최
문화 예술 분야에서의 배리어프리는 고령층, 특히 원로예술가에게 '기회의 장벽'으로 다가온다.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라는 장벽에서 활동 무대를 잃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쉽다. 원로예술가 개인에게는 경력 단절, 사회적으로는 예술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도록 만든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이러한 '기회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2025 원로예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스터피스 토크'를 개최한다. 연극, 무용, 음악, 전통, 시각, 문학 등 각 분야의 원로예술가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예술 인생을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공연과 대담, 강연, 워크숍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돼 원로예술인의 명작과도 같은 삶을 관객과 나누고, 선후배 예술가 간의 소통의 자리이자 예술적 영감을 널리 확산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는 예술가 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가 ‘예술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지원체계로 정비해나가고 있다. 동시에, 원로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기록하고 후세대와 연결할 기회를 제공하며, 시민에게는 원로예술인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예술적 영감을 발견하고 예술의 가치를 체감하는 등 ‘특별한 일상’을 선물하는 취지다.
서울문화재단 송형종 대표이사에 따르면 “아프리카 속담에 한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듯, 원로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국 예술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과 후배들이 세월을 넘어선 예술의 열정과 깊이, 생명력을 새롭게 느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도 오는 2026년 1월까지 장애인과 고령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베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인 개선안이 마련되고 있다. 앞선 사례들과 제도적인 노력이 함께 뒷받침된다면 소외된 사람 없는 '평범한 문화생활'을 누구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진=넷플릭스 '피지컬: 아시아', 극단 달팽주파수, 서울문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