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인간, 입혀진 자아, 마지막 춤…세 안무가의 시선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5년 10월 23일, 오후 08:47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인공지능(AI)과 공존하는 시대, 한국춤의 호흡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사람의 몸을 닮은 ‘옷’이라는 글자에서 출발한 움직임은 입고 벗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권위, 정체성을 비춘다. 죽음을 끝이 아닌 ‘삶의 완성’으로 바라보며 이별을 축제로 전환한 춤사위도 눈길을 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젊은 안무가들의 시선에서 세 편의 무용극이 탄생했다. 정소연의 ‘너머’, 이지현의 ‘옷’, 박수윤의 ‘죽 페스’가 오는 11월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국립무용단 ‘2025 안무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2월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된 3명의 안무가 신작을 트리플빌(Triple Bill, 세 작품을 한 무대에 구성하는 형식) 형태로 무대에 올린다.

2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분장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소연 안무가는 “AI 시대에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본질을 한국춤의 호흡에서 찾았고, 이러한 움직임이 미래에도 어떤 형태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국립무용단 ‘2025 안무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지현(왼쪽부터), 정소연, 박수윤 안무가(사진=국립극장).
국립무용단원인 정소연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을 화두로 한 ‘너머’를 선보인다. 기술이 앞서는 시대와 반대로, LED나 장치를 뺀 단순한 무대 위에서 AI와 인간의 관계를 풀어낸다. 도살풀이·푸너리 등 전통 장단 위에 브라스 밴드의 재즈 리듬과 EDM을 교차시켜 이질적인 분위기 속 낯선 순간들을 유머러스하게 전개한다. 작품은 ‘고립-연결-창발’의 3장으로 구성된다.

정소연 안무가의 ‘너머’(사진=국립극장).
안무가 이지현은 사회적 틀 속에서 형성되는 ‘입혀진 자아’를 주제로 한 작품 ‘옷’을 선보인다. 무대에서 옷은 외부의 시선과 역할을, 옷걸이는 이를 지탱하는 사회적 기준을 상징한다. 오브제를 적극 활용해 리듬감 있는 장면 전환을 선보이며, 전자음악과 한국음악이 교차된다. 이 안무가는 “사회가 규정한 기준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관계를 탐구했다”며 “5개의 장면이 각각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공통된 질문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지현 안무가의 ‘옷’(사진=국립극장).
젊은 창작자 박수윤은 ‘죽 페스’(‘죽음 페스티벌’의 준말)를 선보인다. 작품은 죽음을 ‘슬픔’이나 ‘사라짐’이 아닌 ‘삶의 완성’으로 바라보며 장례를 축제의 형태로 전환한다. 여덟 명의 무용수는 각자 죽음을 통과하는 몸짓을 통해 마지막 순간을 각기 다른 감정으로 풀어낸다. 공연 후반부에는 무용수와 관객이 거울을 통해 같은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장면도 나온다. 휘파람, 종소리, 숨소리 등 가공되지 않은 사운드와 라이브 밴드의 음악이 어우러지며, 삶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춤으로 작별할 것인지를 묻는다.

박 안무가는 “휘파람 소리는 죽음을 앞둔 이의 마지막 숨을 상징하고, 종소리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장례의 이미지를 불러오는 장치”라며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본 경험을 계기로, 이를 슬픔이 아닌 축제로 풀어보고자 했다”고 전했다.

박수윤 안무가의 ‘죽 페스’(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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