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 야간 공연 (사진=연합뉴스)
◇초고층 빌딩 허용, 종묘 경관권 무너지나
2025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이 판결로 서울시는 종묘로부터 약 180m 떨어진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을 본격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이미 해당 구역의 최고 건축 가능 높이를 종로변 98.7m, 청계천변 141.9m로 상향 조정하는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고시한 상태다. 이는 기존 기준보다 크게 완화된 수치로, 사실상 종묘 경관권의 경계선을 허무는 조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의 장엄함이 시각적으로 압도당하고, 고유의 경관 가치가 손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국가 사당으로, 14세기 말 건립 이래 600여 년간 제례 의식이 이어져 온 ‘살아있는 유산’이다. 특히 절제된 선과 공간의 균형미, 주변 경관과의 조화가 빚어내는 시각적 장엄함은 1995년 종묘가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핵심 요건이 됐다.
이 때문에 유네스코는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할 것’을 명시했으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도 종묘 시야를 해치는 인근 고층 건물 허가를 제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보존이 곧 국가 경쟁력…세계유산의 가치
종묘 영녕전 (사진=국가유산청)
관광학계 연구에 따르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은 인지도와 관심도가 올라가고 등재 전 대비 관광객이 증가하며, 지역경제에도 직접적인 파급 효과를 낳는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의 경우, 등재 이후 2033년까지 생산유발효과는 8081억 원, 고용유발효과는 3695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세계유산이 보존을 넘어 국가 브랜드와 관광산업 전반을 견인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훼손될 경우 해당 유산을 먼저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등록한 뒤, 개선되지 않으면 등재를 취소한다. 등재 취소는 관광객 감소와 지역 경제 침체, 국제적 이미지 하락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유네스코가 제공하는 기술·재정적 지원과 국제 협력의 기회도 상실된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된 사례가 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4차선 다리 건설로 경관이 파괴돼 2009년 세계유산 자격을 상실했다. 영국 리버풀의 ‘해양 상업 도시’도 2021년 무분별한 재개발로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되면서 국제적 위상이 크게 하락했다.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은 서식지 축소와 밀렵 방치로 2007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외됐다.
문화유산 보존 실패는 곧 도시 정체성과 국가 이미지의 손상으로 이어지며, 주민의 문화적 자부심에 상처를 입히고 관광 마케팅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부작용도 뒤따른다.
유네스코 측은 지난 4월 서울시에 서한을 보내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유산영향평가(HIA) 실시를 요청한 바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사안에 대해 유네스코와 협력해 필요한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지난해 제정된 세계유산법의 구체적 적용 범위가 확정되지 않아 세운4구역이 평가 대상에 포함될지는 불투명하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가 최근 세운4구역의 높이 계획을 변경한 데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100m, 180m, 혹은 그늘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느냐 하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며 “미래 세대에게 세계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콘크리트 빌딩을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