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유산청 "종묘 앞 고층빌딩 막을 법 제·개정 검토"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5년 11월 07일, 오후 02:34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이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인근에 최고 높이 145m의 고층건물을 세울 수 있도록 고시를 개정한 것을 막기 위한 법령 제정 및 개정에 나선다.

최휘영(왼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7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 완화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서울 종묘를 찾아 전경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를 찾아 최근 서울시의 재개발계획에 따른 입장과 대책을 발표했다.

최 장관은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곳으로 문화강국 자부심의 원천이다”라며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어 “권력을 가졌다고 마치 자기 안방처럼 마구 드나들며 어좌에 앉고 차담회 열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처참하게 능욕을 당한 지가 바로 엊그제다”라며 “이젠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최휘영(오른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7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 완화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서울 종묘를 방문한 뒤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념비석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 장관은 “문체부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할 경우 새 법령 제정도 추진하겠다”며 법적 대응 입장을 밝혔다. 허 청장에게도 국가유산청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신속히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허 청장은 “종묘는 대한민국 정부가 1995년 첫 등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며, 500년 넘게 이어오는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정기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살아있는 유산”이라며 “종묘 앞에 세워질 종로타워 수준 높이의 건물들은 서울 내 조선왕실 유산들이 수백년간 유지해온 역사문화경관과 종합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이 사안은 단순히 높이냐, 그늘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초고층 건물들이 세계유산 종묘를 에워싼 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구도를 상상해보라”라며 “미래세대에게 전세계인이 함께 향유하는 세계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콘크리트 빌딩들을 물려줄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최휘영(오른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7일 서울 종묘에서 종묘 앞 개발 규제 완화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중 세운 4구역 주민 등에게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 고시를 통해 종묘 인근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를 70m에서 145m로 변경했다. 이어 대법원은 지난 6일 문체부의 ‘서울특별시문화재보호조례중 개정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 종묘 인근에 고층건물을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문화계에서는 종묘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네스코는 1995년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세계유산 지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건축 허가는 없을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과도한 개발의 영향으로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된 사례도 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4차선 다리 건설로 경관이 파괴돼 2009년 세계유산 자격을 상실했다. 영국 리버풀의 ‘해양 상업 도시’도 2021년 재개발로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다.

한편 이날 현장에선 세운4구역 주민들이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의 입장 발표에 항의하는 소란도 빚어졌다. 주민들은 “국가유산청의 과도한 규제로 채무가 누적되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며 “국가유산청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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