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타트라는 말이 인생을 다시 움직였어요"…관광일자리 리스타트 과정 '주목'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5년 11월 14일, 오후 01:09

나혜민 씨가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의 ‘신중년·경력보유여성 관광일자리 리스타트 과정’에 지원해 서울의 한 호텔에 취업에 성공했다.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서울 을지로의 한 부티크호텔 프런트 데스크. 퇴근 무렵, 외국인 투숙객의 문의에 응대하는 나혜민(42) 씨의 손길은 바쁘지만 여유가 넘쳤다. 지금은 고객의 표정을 읽고 대응하는 일이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다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마음을 짓눌렀다.

나 씨는 올해 한국관광공사의 ‘신중년·경력보유여성 관광일자리 리스타트 과정’에 지원했다. 그는 “‘리스타트(restart)’라는 단어에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용기를 얻었다”며 “퇴직 뒤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공백기를 버티던 중 ‘경력단절여성 대상 리스타트’라는 공고문을 보고 마치 자신을 부르는 문장처럼 느꼈다”고 회상했다.

나 씨는 20대 시절 해외 호텔에서 하우스키핑 업무를 맡았던 경력자다. 그러나 이후 전혀 다른 업종에서 일하며 그 기억은 잊고 살았다. 그는 면접관이 “호텔 경험이 있으시네요”라고 말하던 순간,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고 했다.

리스타트 과정은 단순한 취업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현직 호텔리어와 여행사 실무자가 강사로 참여했고, AI 기반 일정 설계와 ESG 공정여행 기획까지 최신 산업 트렌드가 반영됐다. 나 씨는 “20대처럼 빠르진 않아도 사회경험이 많다는 점이 현장에서 강점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 10월, 그는 을지로의 한 중소 호텔에 정식 입사했다. 면접 당시 나이나 학력, 경력보다 태도와 대화를 중심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그는 면접관이 나중에 자신의 나이를 알고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입사 후에도 적응은 빨랐다. 나 씨는 “점장이 저보다 10살 이상 어리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일하는 문화 덕분에 오히려 편했다”고 했다. 젊은 직원들과의 협업도 자연스러웠다. 그는 “젊은 동료는 디지털에 강하고, 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익숙해 서로의 빈틈을 채워가며 일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외국인 고객을 도왔던 일이다. 객실이 중복 예약돼 방이 없던 고객을 위해 직접 인근 호텔을 찾아 예약을 도와주고 택시까지 연결해 줬다. “다음날 고객이 감사 전화를 주며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는 전언을 들었을 때, 제 자신이 다시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또 한 일본인 투숙객의 결제 문제를 해결하면서 불만이 칭찬으로 바뀌었을 때도 깊은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입사 한 달 만에 외국인 고객으로부터 받은 첫 긍정적 피드백은 나 씨에게 자신에 대한 가능성과 확신을 갖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근 그는 호텔 패키지 상품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을지로 인쇄 골목의 감성을 담은 캘린더 상품을 준비 중인데, 지역 인쇄소와 협업해 외국인 고객이 한국의 감성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현장 경험을 살려 단순 서비스 인력을 넘어 지역 관광과 연계된 기획 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씨는 자신처럼 다시 시작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도 한 걸음 내디뎌보길 바란다며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걸 저도 일터에서 다시 느끼고 있다”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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