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얼굴"…손수경 '사일런스'전

생활/문화

뉴스1,

2025년 11월 20일, 오전 08:26

손수경 '사일런스'전 포스터 (하랑갤러리 제공)

손수경 작가의 개인전 '사일런스'(Silence)가 종로구 부암동 하랑갤러리에서 23일까지 열린다. 옻칠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간이 쌓여가는 속도와 작가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을 기록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적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전시다.

손수경 작업의 근본적인 질문은 '고요가 어떻게 형체를 갖는가'다. 옻칠을 여러 번 바르고, 말리고, 다시 덧입히는 느린 제작 과정은 그 자체로 시간을 축적하는 행위다. 작가는 순간적인 효과나 화려한 광택을 배제하고, 옻이 자연스럽게 굳어가는 흐름을 수용한다. 이렇게 완성된 화면은 빛을 튕겨내기보다 표면 안쪽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듯한 깊이를 머금는다.

이 은근한 밝음은 단순한 색의 농담을 넘어 작가가 마주한 내면의 차분함과 집중의 흔적을 드러낸다. 작품의 층들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지만, 그 속에는 오랜 기다림과 손의 반복적 호흡이 고스란히 축적돼 있다.

손수경 '사일런스'전 전시 전경 (하랑갤러리 제공)

작가는 작업을 통해 '비워내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충만함'을 경험했다고 밝힌다. 난각을 맞물리듯 하나씩 쌓아가는 순간마다 고요, 기쁨, 소망이 스며들었으며,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도달했다고 회고한다.

내면의 진동은 작품 표면의 미세한 떨림과 공명한다. 관람자에게도 스스로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안한다. 표면 위로 드러나는 미세한 떨림과 잔잔한 움직임을 따라가며, 시각적 소음이 잦아든 공간에서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하랑갤러리 관계자는 "손수경의 작품들은 조용하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은 밀도를 갖는다"며 "이번 전시는 작은 움직임과 느린 시간의 힘을 통해 내면의 감정들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을 관람자에게 선사한다"고 전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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