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 예술창작실 `입주작가 10인` 작업실 현장 엿본다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5년 11월 20일, 오전 12:35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작가들에게 작업실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이 아니다. 변화하는 시간과 환경 속에서 행위가 교차하고, 그 흔적과 동선, 만남의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작업의 현장인 것이다.

국내외 작가들의 레지던시(창작자 작업실·거주공간 지원 프로그램) 작업실을 엿볼 기회가 생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와 아르코미술관은 아르코 예술창작실에 입주한 다양한 국적의 10인 작가 참여 전시 ‘인 시투‘(In Situ)를 내년 1월18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한다.

1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아르코 예술창작실 작가전 ‘인 시투’(In Situ) 간담회에서 참석자가 작품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 시투는 올 6월 서울 평창동에 개관한 아르코 예술창작실에 입주한 1, 2기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작가들이 입주 후 탐색해 온 ‘현장’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 제목인 인 시투는 ‘본연의 장소, 현장에서’라는 뜻의 라틴어다. 작업실로부터 전시장까지 이어지는 작가들의 창작활동인 현장성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전시는 작가들의 작업 과정에 집중해 스튜디오 공간을 미술관으로 옮겨 재현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

올해 첫 사업인 ‘아르코 예술창작실’ 입주작가로는 다양한 지리적, 문화적 배경의 참여작가 10명이 선정됐다. 1기(6~9월)인 △손수민(한국) △윤향로(한국) △발터 토른베르크(핀란드) △부이 바오 트람(베트남) △유스케 타니나카(일본)을 비롯해 2기(10월~2026년 1월) △박정혜(한국) △서희(한국) △카타즈나 마주르(폴란드) △크리스티앙 슈바르츠(오스트리아) △우고 멘데스(모잠비크) 등 한국인 4명, 6명의 해외작가가 참여했다.

폴란드 출신 카타즈나 마수르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아르코 예술창작실 작가전 ‘인 시투’(In Situ) 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혜주 미술관운영팀장은 “그동안 아르코가 한국 작가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아웃바운드 사업을 많이 해왔다면,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올해 처음 예술가들의 상호 교류와 네트워킹을 확대하는 인바운드의 사업을 시작했다”며 “후발 레지던시인 만큼 창작자와 큐레이터·전문가를 연결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입주 작가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창작실의 설립 취지와도 그 맥락을 함께한다. 단기 체류와 창작이 결합된 레지던시의 특성상 창작실은 완성된 결과를 보여준다기보다 머무름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장소로서, 작가들의 아카이브이자 사유의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전시장 1층에서는 1기 입주작가들의 작품이 먼저 관객을 만난다. 윤향로 작가는 집에서 아르코 예술창작실까지 걸어서 오가며 관찰한 풍경을 회화로 표현했다. 연작 ‘얕은 물’은 평창동에서 부암동으로 이어지는 물길과 산길에서 마주한 물의 표면을 담은 작품이다. 발터 토른베르크는 미술관으로 상징될 수 있는 제도와 권위를 비판하는 관객 참여형 작업을, 손수민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매개로 한국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 영상 3점을 선보인다.

발터 토른베르크는 “한국 어디를 가든 눈에 띄었던 게 소화기였다. 사용할 일이 없어야 좋지만, 또 불이 발생해야 쓰여지는 아이러니가 인상적이었다”며 “공공안내 같은 기관의 언어가 일상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재난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고 멘데스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아르코 예술창작실 작가전 ‘인 시투’(In Situ) 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전시장 2층에서는 2기 입주작가들의 작품이 이어진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서희 작가는 ‘방랑하는 방’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살며 이동이 잦은 자신의 삶을 불안정하게 떠 있는 바닥, 꺼진 매트리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 등으로 구현했다.

모잠비크 출신 우고 멘데스는 나무 판화를 바탕으로 한 작업을 내놨다. 그는 모잠비크의 전통 공예를 현대적 재료와 기계적 과정으로 재해석했다. 한국을 방문해서는 민중미술을 찾아봤다고 했다. 우고 멘데스는 “한국과 모잠비크를 관통하는 공통된 과거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한국은 일본, 모잠비크는 포르투갈 식민시대 서사를 공유하고 있다. 두 국가 모두 식민시대와 정부의 억압, 독재나 검열 속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회복을 해왔고 오늘날까지 지속력 있게 존재해 왔는지를 다루고자 했다”고 작품의 의미를 밝혔다.

발터 토른베르크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아르코 예술창작실 작가전 ‘인 시투’(In Situ) 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타즈나 마수르(폴란드)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과 국가적 서사를 사진을 통해 교차해 보여준다. 카타즈나 마수르는 “작업은 현지 할아버지의 집 지하에서 발견한 상자 속 사진으로부터 시작됐다”면서 “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개인의 일상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궁금했다. 한국도 폴란드처럼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을 겪었다. 공개된 정치적 서사가 아니라 개인적 이미지를 찾는 게 목표였다. 한국에 와서는 개인적으로 컨텍해 ’한국이미지 아카이바‘를 찾아 1970~80년대 이미지를 찾았고, 대락 네 다섯 가족 앨범을 찾아 담았다”고 했다.

크리스티앙 슈바르츠는 도시의 무선 통신 인프라가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에 주목하고, 박정혜 작가는 시스템 내 존재하는 중의적인 사물들과 그것이 상징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전시를 기획한 신보슬 예술창작실 프로그램 디렉터는 아트센터 나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의정부디지털아트페스티벌, 대안공간 루프 등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한신 관장은 “아르코 예술창작실 사업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과 교류를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것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라고 밝혔다.

전시는 화~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입장료는 무료다.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는 입주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작가와의 대화’(11월21일)와 국내 레지던시의 현황과 미래를 레지던시 운영자의 시각으로 논의하는 라운드테이블(2026년 1월)이 진행될 예정이다.

아르코미술관 ‘인 시투’ 전시 전경(사진=아르코).
아르코미술관 ‘인 시투’ 전시 전경(사진=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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