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침묵으로 자연에 울림을 내다…호암미술관 ‘실렌티움' 상설 전시

생활/문화

뉴스1,

2025년 11월 24일, 오후 06:10

이우환 '관계항–하늘길' © 뉴스1 김정한 기자

세계적 거장 이우환이 오랜 구상 끝에 완성한 신작 공간 '실렌티움'(Silentium, 묵시암)이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전통 정원 '희원' 내에 상설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실내 전시 작품 3점 야외 전시 작품 1점을 선보인다.

실렌티움은 20세기 한국 주택의 전통을 간직한 건축물 내부에 자리 잡았다. 입구에서부터 두꺼운 철판과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설치물이 외부의 소란과 번잡함을 차단하며, 관람객을 오직 작품과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명상의 상태로 이끈다.

첫 번째 방에 들어서면 바닥에 펼쳐진 '플로어 페인팅'(Floor Painting)이 보인다. 작가는 캔버스 대신 방 전체의 바닥을 회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작품은 하나의 '점'에서 시작하여 점차 '원'으로 확장되며, 색채의 농담이 연한 톤에서 진한 톤으로 미묘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생명이 탄생하고 순환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듯하다.

이우환 '플로어 페인팅'(Floor Painting) © 뉴스1 김정한 기자

두 번째 방의 '월 페인팅'(Wall Painting)은 작가의 상징적인 작업 방식인 절제된 붓질과 여백의 미를 극대화한다. 고요한 공간의 하얀 벽면에 찍힌 단 하나의 푸른 점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그려진 것(점)과 비워진 것(여백)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통해 존재와 부재, 유한과 무한의 관계를 탐구하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점은 '침묵 속에서 울림'을 일으키며 관람객의 내면에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세 번째 방의 '쉐도우 페인팅'(Shadow Painting)은 회화, 설치, 그리고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의 상호작용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방 중앙에는 자연석이 놓여 있고, 그 뒤로 드리워진 실제 그림자와 작가가 벽에 그린 인위적인 그림자가 절묘하게 겹쳐진다.

이우환의 신작 '관계항-만남' © 뉴스1 김정한 기자

실렌티움 건물 외부와 인근 옛돌 정원 산책로에서도 이우환의 신작 '관계항'(Relatum) 연작 3점이 펼쳐져 있다. 작가는 철판이라는 문명의 산물과 자연석이라는 자연의 요소를 나란히 배치하여, 서로 다른 존재들이 충돌하거나 혹은 조화를 이루는 '관계'를 시각화한다.

'관계항 만남'은 약 5m 직경의 거대한 스테인리스 링 구조물과 자연석이 대치하며 강력한 긴장감을 발산한다. '관계항–하늘길'은 20m에 달하는 기다란 거울 패널과 돌이 결합되어 전통 정원의 유려한 자연 풍광을 거울에 담아내고, 현실과 거울 속 환영을 오가게 한다. '관계항 튕김'은 곡선 형태의 스테인리스와 자연석이 만나는 지점에서 에너지의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이 야외 설치작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 공간과 만나면서, 동양적 여백과 서양적 미니멀리즘이 교차하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실렌티움은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이우환의 예술 철학 전체를 몸으로 느끼고 침묵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명상 장소로서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전시는 유료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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