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풍미의 과학'
세계 레스토랑 노마의 발효 연구를 이끈 향미화학자가 풍미의 원리를 5가지 법칙으로 풀었다. "풍미는 분자"라는 명제에서 출발해 열·발효·추출·패턴으로 맛을 설계하는 법을 안내한다.
저자 아리엘 존슨은 우리가 느끼는 달콤함이나 짠맛이 음식 안에 '완성된 감각'으로 들어있는 게 아니라, 맛·냄새 분자가 수용체를 자극해 뇌가 합성하는 지각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면 즙 속 분자가 혀와 코를 자극하고, 그 신호를 뇌가 조합해 단맛·신맛·감칠맛·토마토 향이라는 '풍미'로 만들어낸다. 이 전제 위에서 책은 맛의 과학을 주방의 실천으로 번역한다.
소금의 균형이 왜 모든 맛을 일으켜 세우는지, 감칠맛이 왜 단백질 분해의 부산물인 글루탐산에서 오는지, '맛은 혀' '향은 코'라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 두 감각의 상호 증폭이 어떻게 정서를 데려오는지를 차근히 짚는다.
법칙 1·2는 '풍미는 맛과 냄새' '풍미에는 예측 가능한 패턴이 있다'로 요약된다. 저자는 다섯 가지 맛(짠·신·단·감칠·쓴)과 매운 자극을 스펙트럼으로 놓고, 허브·향신료·과일·식물·고기 향 같은 큰 패턴을 구분해 조합 규칙을 제안한다.
법칙 3은 '농축·추출·불어넣기'다. 소수성·친수성·극성 개념을 요리에 끌어와 지방·물·알코올·식초로 원하는 분자를 선택적으로 옮기는 기술을 보여준다. 버터가 냉장고 속 치즈·마늘 냄새를 '빨아들이는' 현상은 풍미 분자의 이동을 설명하는 생활 실험으로 등장한다.
법칙 4는 '만들고 바꾸기'다.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 그슬림과 연기 같은 열의 작용, 젖산·초산·균류 발효로 풍미를 '창조'하는 법을 구체적 조리 단계와 연결한다. 몰레 네그로 국물의 그슬린 향, 양파·생강을 까맣게 태운 뒤 뽑아내는 국물의 깊이, 구운 표면의 노릇함이 주는 구수함은 모두 화학적 변환의 산물이다.
실전 파트는 주방의 알고리듬이다. 고기 풍미의 핵심 분자인 미오글로빈은 열과 만나야 존재감을 드러난다. 그래서 '언제·어떻게' 가열하고 '얼마나' 숙성할지의 선택이 달라진다.
팬에 남은 갈변 잔여물을 액체로 녹여내는 디글레이징은 '농축→추출'의 교과서다. 허브·향신료는 식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강한 분자'다. 이 강렬함을 소스·오일·비니거에 '이식'하려면 지질·수용성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뿌리채소는 당·셀룰로스 비중에 따라 조리법이 갈린다. 당근·무·비트처럼 당이 많은 채소는 무수 가열로 캐러멜화와 조직 변화를 유도하면 풍미가 열린다.
저자는 UC 데이비스 향미화학 박사로서의 분석과 노마 발효연구소에서의 조리 실험을 한 권에 묶는다. 90여 가지 디테일 레시피와 일러스트·표는 '보기 좋은 이론'을 '손에 잡히는 방법'으로 바꾼다.
△ 풍미의 과학/ 아리엘 존슨 지음·제효영 옮김/ 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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