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라틴아메리카의 가난은 우연이 아니다. 금·은·설탕·석유로 이어진 '열린 혈맥'의 수탈사가 오늘의 불평등과 어떻게 이어졌는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문학과 경제사로 해부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은 발견에서 시작해 개발로 이어졌다. 저자는 16세기 정복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자원 수탈의 구조를 '피 흘리는 대륙'이라는 강렬한 은유로 그려낸다.
금과 은, 설탕과 커피, 고무와 주석, 석유와 오늘의 광물까지 대륙의 자원과 노동이 북반구의 자본 축적을 떠받쳐 온 장면들이 파편적 기록(증언·통계·연대기)을 묶는 문체로 되살아난다.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의 빈곤은 내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외부 중심부(유럽·미국)로의 지속적 유출 때문이라는 논지를 일관되게 밀어붙인다.
그는 '사건의 연대' 대신 '자원의 흐름'을 전면에 세운다. 생산지와 소비지, 남과 북, 식민지와 제국의 비대칭을 자원별로 연결해, 착취가 어떻게 서사·담론·제도 속에서 '정상화'됐는지를 보여 준다.
포토시의 은은 에스파냐 재정과 유럽 초기 자본주의를 윤택하게 했지만, 볼리비아 땅에는 가난과 초과사만 남았다. 설탕의 달콤함 뒤에는 삼각무역과 노예선의 악취가 이어졌고, 바나나와 커피의 세계화는 '바나나 공화국' 같은 정치·경제 종속을 낳았다.
오늘날에도 구리, 리튬 등 세계 공급망의 핵심 자원들이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흐르고, 가격 결정권과 기술은 중심부에 있다. 책은 '저개발은 개발의 한 단계가 아니라, 외부 개발의 결과'라는 냉혹한 문장을 남긴다.
△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조구호 옮김/ 알렙/ 2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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