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내전 소설로 써 정부 탄압…고통은 망각해선 안 돼"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5년 12월 04일, 오후 07:09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나는 내전(알제리 내전)에서 살인을 저지른 이는 연금을 받고 있고, 내전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는 공격을 받는 국가에서 왔다.”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 작가인 알제리 출신 카멜 다우드가 3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가진 소설 ‘후리’ 출간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민음사)
소설 ‘후리’로 지난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상을 수상한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55)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다우드는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럽 지역 이외의 국가를 방문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알제리 비밀경찰에 체포될까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없었지만, 다행히 자유로운 몸으로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후리’는 알제리 정부가 헌법으로 언급을 금지한 알제리 내전(1991~2002)을 여성 피해자의 목소리로 담은 소설이다. 알제리 내전은 1990년대 알제리 정부와 이슬람주의 세력이 충돌하며 약 10년간 이어진 비극이다. 알제리 정부는 2024년 프랑스에서 ‘후리’가 출간되자 역사 왜곡을 이유로 이 작품의 국내 출간을 금지하고 다우드에 대한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다우드는 2023년부터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 거주 중이다.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 작가인 알제리 출신 카멜 다우드가 3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가진 소설 ‘후리’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음사)
다우드는 연세대가 한강 작가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컨퍼런스 ‘2025 연세노벨위크’ 기조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내한에 맞춰 ‘후리’의 한국어 번역본도 출판사 민음사를 통해 정식 출간됐다. 다우드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겪은 알제리처럼 한국도 같은 식민지배의 역사를 겪었기에 흥미가 많았다”며 “한강 작가의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기억과 개인의 자유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내 작품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우드는 “설교나 연설, 논문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글쓰기라면 소설은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글쓰기다”라고 밝혔다. 그가 ‘후리’를 쓴 이유이다. 다우드에 따르면 알제리는 내전을 겪으면서 25만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알제리 정부는 이에 대해 사과나 치유 노력 대신 침묵할 것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다우드는 “전 세계적으로 기억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 국가는 알제리 밖에 없을 것”이라며 “제도화된 망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이에 대해 계속해서 글로 쓰고 증언함으로써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제리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후리’는 전 세계에서 6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알제리 내전의 참상을 알렸다. 다우드는 “이 소설은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통을 겪은 피해자가 어떻게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담은 보편적인 이야기”라며 “한국 독자들도 ‘후리’를 읽으면서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가져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2024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 작가인 알제리 출신 카멜 다우드가 3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가진 소설 ‘후리’ 출간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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