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원재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갤러리조은에서 성연화와 열고 있는 2인전 ‘평온의 가장자리’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 곁에 앉았다. ‘푸른 물방울 #015-2’(2025, 18×18×25㎝·왼쪽) 옆으로 ‘순간의 가장자리’(2025) 연작이 옹기종기 모였다. 작가는 물레에 올린 점토로 물방울 모양의 ‘흙방울’을 빚는다. 은근한 색과 부드러운 외양에 감춘 속 깊은 단단함이 특별하다. 작가는 “물레의 원심력과 손에 맞물려 호흡하는 흙을 느끼며 순환하는 자연을 떠올리고 그 안에서 순간의 형상을 탐색한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 순간을 못내 잡아두고 싶었던 건가. 우주의 시간을 멈춰 세우고 대신 사람의 시간을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우주를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그보다 더 지난한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야 했을 텐데. 그럼에도 저 ‘사람의 물방울’은 어찌 저리 평온하기만 한지.
펑퍼짐하게 바닥에 내려앉은 모양. 항아리라면 좁고 큰 주둥이를 벌리고 있을 윗부분이 완전히 막힌 채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제 막 공중에서 똑 떨어져 공기 중으로 흩어져가기 직전인, 영락없이 물방울이다. 다만 저 물방울의 정체는 말이다. 물이 아닌 ‘흙’이다. 중력이 아닌 손과 흙으로 빚어낸 형체. 그래 ‘흙방울’이다.
조원재의 ‘물방울’ 작품 설치 전경. 연작 ‘푸른 물방울’(2025) 중 두 점이다. 물레에서 형체를 빚은 두 개의 몸체를 붙인 뒤 다시 물레에 올려 송곳처럼 생긴 도구로 표면을 찍어 패턴을 새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조원재(37). 그간 그럴 듯한 전시로 이름을 제대로 내건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초짜 무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대만국제도자비엔날레’(2016), ‘경기국제도자비엔날레’(2017) 등에서 입선·금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니까. 하다못해 “슬쩍 기웃거려나 보자” 했던 ‘익산공예대전’에선 대상(2020)과 우수상(2024)까지 거머쥐었다. 이쯤 되면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또래 작가와 비교해보면 말이다. 신진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나이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작품에서 보이는 연륜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 작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건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조원재의 주요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했다. ‘순간의 가장자리’(2025), ‘푸른 물방울’(2025),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등 ‘물방울’ 연작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두고 왼쪽에는 ‘2025-결 달항아리-004’(2024, 37.5×37.5×34㎝)를, 오른쪽에는 ‘자연시점 #001’(2023, 42×12×37㎝)을 놓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조원재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에 섞여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음대 지망생이었다. 피아노를 쳤는데 어느 날 도저히 못하겠다 싶더라.” 그래서 급작스럽게 전공을 바꿔서 진학한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 전공이었단다. 그런데 그 선택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나 보다. “함께 뭔가를 도모하는 경영보다는 혼자 하고 혼자 결정하는 일이 내게 맞겠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니.
그렇게 졸업 후 찾아간 일이 “내 손으로 하는 도예”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반전이 있다. 서울대 평생교육원 도예취미반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거다. 평생교육원이라니. 느지막이 제2, 제3의 인생을 위해 모인 어르신 동급생들과 1년여를 함께 공부했다는 소리다. 그 시절이 새삼스러운지 작가는 “아주머니들과 1년쯤 공부하고 수료한 뒤 공동작업실을 빌려 혼자 작업했다”며 웃는다. 결국 그 세월이 “오랜 시간”의 서장이었고 장장 10년을 넘기며 이어졌단 얘기다.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조원재의 ‘물방울’ 연작 중 ‘순간의 가장자리’(2025)와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곁에 넉넉해 보이는 항아리 하나(‘2024-푸른호-007’ 2024, 28×28×22.5㎝·아래 왼쪽)가 놓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말대로 작가 작업은 “물레로 흙을 빚고 만지는” 일이다. 즐겼던 견뎠던 그 오랜 세월을 수련기간으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물레작업이 마치 피아노 치는 것과 같더라. 페달을 밟고 손을 움직여 유형의 형체를 만들어내니까. 게다가 몇 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훈련이 이미 돼 있던 상태였다. 익숙한 다른 일을 하는 듯했다고 할까.”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바닥에 설치한 조원재의 ‘물방울’ 연작과 항아리 작품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순간의 가장자리’(2025), ‘푸른 물방울’(2025) 곁에 ‘2023-푸른호-017’(2023, 21×21×20㎝·오른쪽)가 놓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물방울’이라고 통칭하는 연작은 그 생각에서 비롯됐다. 주둥이가 없는, 고깔처럼 뾰족한 닫힌 결정체. “물레에 점토를 올리고 보통은 두 개의 몸체를 만든다. 둘을 붙여 형체가 생기면 다시 물레에 올리고 송곳처럼 생긴 도구로 표면을 찍어 패턴을 새긴다.” 이후 1240도쯤 되는 전기가마에서 구워내는데, 여느 도자 작업처럼 사전에 유약을 바르진 않는단다. 대신 사포로 문질러 윤기를 낸다고 했다. 덕분에 작가의 작품은 물과 바람이 스친 풍화작용을 이겨낸 단단한 돌멩이처럼 보인다.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 전경. 작가 성연화의 작품과 조우한 조원재의 작품들이 2인전의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탁자 위에 설치한 조원재의 작품 ‘분홍빛 호’(2023, 30×30×33㎝·왼쪽)와 ‘매우 작은 순간의 가장자리’(2025) 연작 위로 성연화의 한지회화 ‘평온’(Serenity 2025)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겸손한 작가의 겸손하지 않은 작품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갤러리조은. 이제야 작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시가 한창이다. 남들은 다 하는 개인전도 ‘아직은 아니다’ 싶었는지 한지회화를 하는 작가 성연화(40)와 2인전 ‘평온의 가장자리’로 대신했다(24일까지).
작가 조원재가 갤러리조은 ‘평온의 가장자리’ 전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멀리 성연화의 한지회화 ‘흐름’(Flow 258-000-020 2025, 116.8×91.0㎝)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외형이야 어떻든 한결이다. 여리디여린 이슬을 입은 견고한 흙방울. 이제 농밀한 그 덩어리를 세상 속에 본격적으로 떨어뜨릴 준비가 끝난 듯하다.
조원재의 ‘이전과 이후 그 사이’(2025, 가변크기 4.5×4.5×4㎝ & 33×33×30㎝) 설치 전경. 작고 동그란 물방울이 공중에 매달린 아래로 커다랗고 뾰족한 물방울을 배치해 적게는 물방울의 움직임, 크게는 자연의 순환을 내보인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연출이 돋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