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만 있고 리더 없는 '5대 문화강국'[생생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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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2월 05일, 오전 05:4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난 주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라시(정보지)가 삽시간에 퍼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원장에 드라마 ’야인시대’에 구마적으로 출연했던 배우 이원종이 낙점됐다가, 모종의 이유로 엎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진위(眞僞)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지라시가 떠돌기 수 일 전에 원장 후보자 면접을 진행했고,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로 면접 결과가 전달됐다는 건 사실이기에 아직까지 선임 발표가 없는 건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예술의전당 외관 전경. (사진=예술의전당)
콘진원장 선임 여부가 지라시로 만들어질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큰 것은 이 자리가 벌써 1년 4개월여 공석이기 때문이다. 콘진원은 지난 2024년 9월 조현래 전 원장의 임기 종료 이후 유현석 직무대리 체제다. 콘진원보다 더 끔찍한 곳이 있다. 바로 국립국악원이다. 김영운 전 원장이 지난 2024년 6월 임기를 마친 뒤 1년 7개월째 원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사혁신처가 세 번째 국립국악원장 공모에서도 최종 후보 3명 모두 부적격으로 판단해 다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콘진원과 국립국악원 뿐만이 아니다. 서울예술단(1년6개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1년1개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1년), 예술의전당(8개월) 등도 기관장 장기 공백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기관장들도 꽤 있다. 지난해 11월 임기가 끝난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 지난 달 임기가 종료된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위원장 등이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본인 의지와 별개로 계속 직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박인건 국립극장장,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유은선 국립창극단장, 김종덕 국립무용단장,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장 등의 임기도 조만간 끝나지만, 후임 인선은 감감무소식이다. 기관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한 문체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문화·예술 분야를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다른 기관 관계자는 “대행 체제에서는 구조적으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기관장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업무가 마비되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문체부 업무보고 때 이재석 예술의전당 사장 직무대행을 향해 “사장 없어도 되겠네요?”하며 우스갯소리를 건넨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테다. 하지만 기관장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없으면 문화예술 정책 효과의 발현이 늦어질 수 있는 건 분명하다. 대통령의 손발이 돼 정책을 펴는 곳이 정부 부처라면,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곳은 공공기관들이기 때문이다. ‘정책의 동맥경화’가 우려된다.

이 대통령은 ‘K컬처 300조 원 시대’를 만들어 세계 5대 문화강국이 되겠다는 큰 비전을 제시했다. K팝, 드라마, 영화, 게임 등을 ‘국가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아 오는 2030년까지 시장 규모를 300조 원, 수출액을 50조 원 규모로 키운다는 야심찬 포부다. 이후로도 문화예산 증액을 언급하는 등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왔지만, 최일선에서 정책을 집행할 공공기관들의 리더십 공백이 더 길어진다면 비전 달성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자칫 공수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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