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 사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2월 05일, 오전 06:00

토머스 칼라일 (출처: Jules Maurice Gaspard, 1916,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81년 2월 5일,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이 런던 첼시의 자택에서 85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은 격변하는 19세기 영국의 정신적 지주를 잃은 것과 같은 큰 슬픔을 안겼다.

1795년 스코틀랜드의 독실한 칼뱅주의 가정에서 태어난 칼라일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지적 기초를 닦았다. 초기에는 독일 문학을 영국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했으나, 점차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하며 사회 비평과 역사 저술에 매진했다. 그의 출세작인 '의상 철학'(Sartor Resartus)은 물질주의에 빠진 당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정신적 가치의 회복을 역설했다.

칼라일의 가장 찬란한 업적은 역사 서술 방식의 혁신에 있다. 1837년 출간된 '프랑스 혁명사'는 건조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마치 눈앞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듯한 생생하고 역동적인 문체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역사를 '수많은 전기의 집합'으로 봤으며, 이러한 관점은 그의 대표작인 '영웅 숭배론'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류의 역사가 뛰어난 통찰력과 의지를 가진 '영웅'들에 의해 전진한다고 믿었으며, 마호메트, 단테, 나폴레옹 등을 통해 그 모델을 제시했다.

만년에 이르러 그는 산업화로 파편화된 사회를 보며 강력한 지도력과 도덕적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적 경향을 띠기도 했으나,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의 근본 사상은 러스킨과 모리스 등 후대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첼시의 자택에서 검소하게 생활하며 '첼시의 현인'이라 불렸던 그는, 화려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매장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인 스코틀랜드 에클페칸에 부모님과 함께 잠들기를 원했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침묵은 금이다"라고 외치며 진실과 행동을 촉구했던 그의 불꽃 같은 문장들은 영국 지성사의 영원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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