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의 거인, 토머스 모어의 탄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2월 07일, 오전 06:00

토머스 모어 초상화 (출처: 한스 홀바인, 1527,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478년 2월 7일, 영국 런던에서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이자 법률가인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태어났다.

모어는 헨리 8세의 총애를 받는 대법관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며 역사에 강렬한 발자취를 남겼다.

모어는 런던 법조계 가문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과 법학을 공부했다. 탁월한 지적 능력과 유머 감각을 지녔던 그는 에라스무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인문주의의 정수를 습득했다. 법률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자 1529년, 영국 국왕 헨리 8세는 그를 평민 출신 최초의 대법관(Lord Chancellor)에 임명했다.

그의 가장 위대한 문학적 업적은 1516년 발표한 '유토피아'(Utopia)다. 그리스어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사유 재산이 없고 평등한 교육과 노동이 보장되는 가상의 섬을 묘사했다. 이는 당시 부패한 영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이상향에 대한 선언이었다.

모어의 비극은 헨리 8세의 이혼과 종교 개혁 과정에서 시작됐다. 국왕이 가톨릭교회와 결별하고 스스로를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하는 '수장령'에 찬성하라고 강요하자,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모어는 침묵으로 저항했다. 그는 결국 반역죄로 런던탑에 투옥됐고, 1535년 7월 6일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토머스 모어의 삶은 권력과 양심이 충돌할 때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태도를 상징한다. 그는 정치적 실무자이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인 이상주의자였으며, 자신의 원칙을 위해 목숨을 던진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로 불린다. 1935년 교황청은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며 그의 고결한 희생을 기렸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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