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로고 (출처: KAIS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71년 2월 1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이 서울 홍릉에서 정식 출범했다. 이는 단지 한 학교의 설립을 넘어 원조에 의존하던 후진국에서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국가적 선언이었다.
1960년대 한국은 산업화를 위해 고도의 기술 인력이 절실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제대로 된 대학원 과정이 부족했고, 해외로 유학을 떠난 수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른바 '두뇌 유출'은 심각한 문제였다.
1968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이공계 육성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동시에 뉴욕공과대학의 정근모 교수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과학기술 대학원 설립안을 제출했다. USAID 존 해너 처장은 이를 바탕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학원 설립을 권고했다. 결국 USAID 차관을 지원받아 한국과학원 설립이 추진됐다.
1981년 1월 5일에는 한국과학원(KAIS)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을 통합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발족했다. KAIST는 한국 산업 구조를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및 첨단 IT 산업으로 체질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초기 졸업생들은 포항제철, 현대조선소 등 국가 기간산업 현장으로 달려가 기술적 난제를 해결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큐마크, 네이버 등 수많은 기술 벤처 기업의 산실이 되어 한국의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를 주도했다.
설립 당시 "한국에서 과연 세계적인 과학자가 나오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KAIST는 지난 50여 년간 약 7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그 우려를 불식시켰다.
KAIST 설립은 한국이 '기술 종속국'에서 '기술 선도국'으로 변모하는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첨단 IT 환경과 경제적 풍요 뒤에는, 우려의 시선을 뚫고 과학 입국의 기치를 올렸던 이들의 원대한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