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 초상화. (출처: Unknown author, 18C,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624년 2월 17일,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여성, 무조(武照)가 탄생했다. 훗날 측천무후로 불리게 될 그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공고했던 동아시아에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주(大周)' 제국을 선포한 유일무이한 여황제다.
무조는 당 태종의 후궁인 재인으로 입궁했으나, 태종 사후 비구니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태종의 아들 고종과의 인연으로 다시 궁궐에 복귀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치밀한 정치적 계산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기존의 왕황후와 소숙비를 축출하고 655년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
고종이 병약해지자 무조는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683년 고종 사후,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로 폐위하거나 억압하며 권력 기반을 다졌다. 마침내 690년, 그는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스스로 성신황제(聖神皇帝)라 칭하며 제위에 올랐다.
그의 통치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내준신' 등 혹리들을 기용해 황실 종친과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문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과거제를 대폭 확대하여 신진 관료층을 육성했다. 이는 훗날 당나라의 전성기인 '개원의 치'를 여는 밑거름이 되었다.
705년 정변으로 퇴위한 그는 같은 해 12월 사망했다. 그의 능침인 건릉 앞에는 아무런 글자도 새겨지지 않은 '무자비'가 서 있다. 자신의 공과를 후대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오만함 혹은 초연함의 상징이다.
측천무후는 여성이라는 한계를 넘어 제국을 호령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흐른 혈흔 또한 깊다. "그는 단순한 찬탈자인가, 아니면 시대를 앞서간 통치자인가" 하는 물음은 1400년이 지난 지금도 권력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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