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올 설 연휴 한국인의 여행 가방엔 고물가 시대의 현실적 고뇌와 ‘나를 위한 보상’이라는 열망이 공존했다. 항공권은 저비용항공사(LCC)의 최저가를 샅샅이 뒤지는 ‘가성비’ 소비가 대세였으나, 현지 숙소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5성급 호텔과 독채 풀빌라에 과감히 투자하는 ‘N극화(양극화)’ 양상이 뚜렷했다. 본질에서 벗어난 형식은 철저히 배제하되 만족을 좌우하는 경험 등 핵심 요소엔 자원을 집중하는 현대적 소비 방식의 전형이라는 평가다.
12일 트립닷컴 등 글로벌 여행 플랫폼에 따르면 설 연휴 4~5성급 호텔 예약 비중은 전체의 75%에 달했다. 업계 예상치인 65%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5성급 호텔은 예약이 전년 대비 59% 늘었다. 호텔이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을 넘어 미식, 스파, 레저 등을 원스톱으로 즐기는 ‘럭셔리 호캉스’가 명절 여행의 ‘뉴노멀’로 안착했다. 숙소가 여행의 부차적 요소가 아닌 그 자체로 여행 목적지가 됐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확실한 사치’의 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이동 과정의 ‘극단적 효율’에서 찾을 수 있다. 단거리 노선 LCC 예약률이 90% 후반대를 기록하며 사실상 만석 행진을 이어간 가운데 기내식 등 유료 서비스를 포기하고 절감한 예산을 숙소 등급 상향에 재투자하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여행의 비(非) 본질적 지출을 냉정히 거부하고 개인의 만족도가 높은 경험에 자본을 집중하는 ‘영리한 사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고물가·고금리에서 발현한 ‘스몰 럭셔리’ 심리가 전이된 결과로 보고 있다. 가계 경제 위축으로 여행 전체를 호화롭게 즐기기는 부담스럽지만, 휴식의 질을 결정하는 ‘공간’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 번을 가더라도 제대로 쉬겠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최고급 환경에서 ‘밀도 높은 휴식’을 취하려는 갈망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여행 기간 연장과 목적지가 다변화한 것도 이러한 트렌드를 뒷받침한다. 설 연휴 기간에 개인 연차를 더한 최대 14일 안팎의 중장기 여행 비중은 65%에 달했다. 덩달아 미국, 유럽 등 장거리 노선 예약도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다. MZ와 젊은 부모 세대를 중심으로 ‘나를 위한 투자’로서 여행의 가치가 상승, 고가의 장거리 노선조차 ‘일생의 한 번뿐인 경험’이라는 명분 아래 선택적 집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윤혜진 경기대 관광학과 교수는 “과거 여행이 관광 중심의 노동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고급 호텔, 리조트에서 온전한 휴식과 휴양을 누리는 ‘스테이케이션’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소비자 취향이 파편화되고 안목이 상향 평준화됨에 따라 가성비 저가 시장과 초프리미엄 시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양극화가 여행 산업의 구조적 특징으로 굳어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