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떡볶이, 세계인의 떡볶이[정덕현의 끄덕끄덕]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2월 19일, 오전 06:45

[정덕현 문화평론가]밀라노 동계올림픽을 위해 현지에 열린 코리아하우스가 몰려드는 인파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여러 부스마다 길게 줄이 늘어섰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긴 줄은 치킨, 만두, 떡볶이 등 길거리 음식을 체험하는 부스들이다. 사실 이번 올림픽을 맞아 코리아하우스를 열면서도 이 정도의 반응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음식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가 아닌가. 그들이 한국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인 ‘골든’을 따라 흥얼거리고 떡볶이와 치킨을 먹으며 엄지를 치켜 올리는 모습은 이제 K콘텐츠를 타고 K푸드 같은 한국문화가 전 세계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들에게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1위가 K팝, 2위가 K푸드라고 한다. 즉 K콘텐츠와 K푸드의 동반성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시너지를 만들어온 것이다. 일찍이 2003년 방영한 ‘대장금’의 글로벌 열풍이 아시아권에 한식 열풍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2013년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에 치맥 문화를 전파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으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전 세계인의 메뉴가 됐고 지난해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김밥, 컵라면 같은 한식을 전 세계인들의 일상 식탁 위로 올렸다.

흥미로운 건 K콘텐츠와 결합한 K푸드가 서양인들의 입맛까지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주인공들이 김밥을 한 줄씩 통째로 들고 먹는 장면이 나오면서 미국에서는 ‘김밥 한입에 먹기’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건 놀라운 변화다. 서양인들에게 ‘바다의 잡초’라는 뜻의 ‘시위드’(Seaweed)로 불리는 김은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밥 챌린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인식이 바뀌었다. 김은 오히려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많다는 게 알려지면서 건강한 식재료로 주목받게 됐다. 질겅질겅 하는 식감 때문에 서양인들이 기피하던 떡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BTS) 같은 K팝 아티스트들의 먹방에 떡볶이가 등장하면서 떡에 대한 서양인들의 호감도 상승했다. 고추장 같은 양념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파이시(Spicy)와 스위트(Sweet)를 더해 ‘스위시’(Swicy)라 불리는 ‘맵단’(맵고 단) 트렌드가 뜨고 있는데 덩달아 고추장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햄버거 브랜드인 쉐이크쉑에서 미국과 영국에 ‘고추장 치킨 쉑’ 같은 제품을 내놓을 정도다. 고추장이 갖고 있는 매우면서도 달콤한 맛이 서양인들의 입맛까지 바꿔나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K콘텐츠와 K푸드가 이처럼 동반 시너지를 일으키며 약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그것이 ‘퓨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K팝 열풍이 불 수 있었던 것은 팝이라는 세계 공통의 보편적인 지대 위에 아이돌 그룹이나 칼군무 같은 한국적인 요소들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킹덤’ 같은 드라마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좀비 장르나 데스 서바이벌 장르 속에 사극이나 한국의 놀이 문화 같은 차별적인 요소를 잘 섞었기 때문이다. 보편성과 차별성의 퓨전이 만들어낸 독특한 재미가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이다.

K푸드도 마찬가지다. 본래 한식 자체가 여러 이질적인 것들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비빔’의 미학이다. 비빔밥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다양한 김치들이 그 퓨전의 사례들이다. 최근 해외에서 주목하는 K푸드인 라면이나 만두, 김밥 같은 것도 바로 그 퓨전의 결과물들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나 중국의 그것들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오히려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는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러한 K푸드의 퓨전 경향은 최근 K콘텐츠 안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시즌2까지 큰 성공을 거둔 ‘흑백요리사’는 일식, 중식, 한식, 프렌치식 등 전 세계의 요리법을 지닌 출연자들이 등장해 한국의 재료로 요리를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퓨전을 창출해내는 요리 서바이벌이다. 시즌1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에드워드 리가 한국의 장을 이용한 퓨전 요리를 선보이면서 ‘비빔인간’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장면이 이 서바이벌의 특징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난해 방영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화제를 불러일으킨 ‘폭군의 셰프’는 과거 ‘대장금’ 시절과는 사뭇 달라진 K푸드의 퓨전을 보여줬다. ‘대장금’이 궁중요리 중심의 한식을 해외에 소개하는 차원에 머물렀다면 ‘폭군의 셰프’는 조선 시대로 타임리프한 프렌치 셰프라는 설정을 통해 서양의 요리법과 조선의 식재료를 엮는 퓨전을 선보였다. 고추장 버터 비빔밥이나 흑임자 마카롱 같은 요리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K푸드에 관심을 둔 해외를 겨냥한 퓨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로컬의 차별성과 글로벌의 보편성을 엮어내는 퓨전은 마치 줄타기와 같다. 균형을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로컬의 원칙이나 기본에만 너무 집착하면 글로벌한 대중성을 잃게 되고 지나치게 글로벌한 대중성에만 치우치면 본질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최근 갈수록 글로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K팝에서 점점 K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건 인기에 취하다 자칫 정체성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마찬가지로 K푸드가 인기를 끌면서 외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들이 해외에 생겨나고 있는데 한식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음식을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걸 막을 순 없겠지만 진짜 한식 고유의 본질을 공식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공인된 교육 인프라가 필요해 보인다.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겨냥하는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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