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됭의 포성이 울리고 '지옥'이 시작되다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2월 21일, 오전 06:00

베르됭 전투. (출처: Collection DocAnciens/docpix.fr, 1916,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16년 2월 21일 오전 7시 15분, 프랑스 동북부의 요새 도시 베르됭(Verdun) 상공을 가르는 거대한 포성이 유럽의 정적을 깨뜨렸다.

이날 독일 제국군은 프랑스군의 전력을 완전히 고갈시키기 위한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잔혹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될 베르됭 전투의 서막이었다.

독일 참모총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은 전략적 요충지인 베르됭을 공격해 프랑스군이 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예비대를 쏟아붓도록 유도했다. 그의 목적은 단순히 영토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군의 병력을 끊임없이 소모시켜 '백색 살육'을 행하는 것이었다.

전투 첫날, 독일군은 8km에 달하는 전선에 약 1200문의 화포를 배치하고 9시간 동안 100만 발 이상의 포탄을 퍼부었다. 철저히 계산된 포격은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초토화했으며, 보병이 진격하기 전 지형 자체를 바꿔놓았다.

초기 프랑스군은 뫼즈강 동쪽의 주요 요새인 두오몽을 상실하며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필리프 페탱 장군은 "그들은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방어 체계를 재정비했다. 그는 '성스러운 길'이라 불리는 보급로를 확보해 매주 수천 대의 트럭으로 병력과 물자를 쏟아부었다. 전투는 곧 진흙탕 속의 참호전으로 변질됐고, 양측 병사들은 독가스, 화염방사기, 그리고 끝없는 포격이 지배하는 '지옥'에서 사투를 벌였다.

베르됭 전투는 같은 해 12월까지 약 10개월간 지속됐다. 결과적으로 프랑스가 요새를 사수하며 승리했으나, 양측의 피해는 처참했다. 사상자는 프랑스군 약 31만 ~ 54만 명, 독일군 약 28만 ~ 43만 명이라는 거대한 인명 피해를 남겼다. 이는 근대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산업적 대량 살상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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