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코 카루소 (출처: Unknown photographer, 191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73년 2월 25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가난한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훗날 '전설의 테너'이자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악가로 추앙받게 될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다.
카루소의 시작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성악 레슨을 받으며 꿈을 키웠다. 초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가늘다는 평을 듣기도 했으나, 끊임없는 연구와 훈련 끝에 그는 전무후무한 '바리톤의 풍성함을 지닌 테너'의 음색을 완성했다.
1894년 데뷔 이후 이탈리아 전역을 휩쓴 그는 190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Met)에 입성하며 세계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카루소 이전의 테너들이 가볍고 기교적인 '벨칸토' 창법에 치중했다면, 그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베리시모'(사실주의) 창법을 확립했다.
그의 목소리는 가사 하나하나에 영혼을 담아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 완벽한 호흡 조절과 성구 전환을 통해 고음에서도 부드럽고 강력한 소리를 유지했다. 푸치니의 '라 보엠',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속 '의상을 입어라'는 여전히 카루소의 목소리가 기준점으로 평가받는다.
카루소는 기술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선구자였다. 1902년,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그라모폰 녹음에 참여해 '음반으로 돈을 번 최초의 음악가'가 됐다. 그의 목소리가 담긴 레코드는 전 세계로 팔려 나갔고, 이는 오페라가 소수 귀족의 전유물에서 대중적인 예술로 확장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카루소는 1921년, 48세라는 이른 나이에 늑막염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260여 개의 녹음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악도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목소리 하나로 대륙을 연결하고, 소리를 영원히 기록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고 성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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