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육군 장교들의 쿠데타 2·26 사건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2월 26일, 오전 06:00

2·26 사건의 반란군. (출처: Unknown author, 1936,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36년 2월 26일 새벽, 눈 덮인 도쿄가 선혈로 물들었다. 일본 육군 내 과격파 청년 장교들이 '쇼와유신'과 '존황토간'(임금 주위의 간신을 제거함)을 내세우며 무력 봉기를 일으켰다.

반란군은 약 1500명의 병력을 동원해 정부 요인들을 암살하고 도쿄 중심부를 점거하며 제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주동자인 노나카 시로, 안도 데루오 등 대위급 장교들은 부대를 이끌고 총리대신 관저, 경시청, 육군성 등을 습격했다.

사이토 마코토 내대신은 자택에서 반란군의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 일본 경제의 기틀을 닦은 다카하시 고레키요 대장은 침실에서 살해당했다. 와타나베 조타로 교육총감은 거센 저항 끝에 사살됐다. 오카다 게이스케 총리는 비서관이자 매제인 마쓰오 덴조가 총리로 오인받아 대신 살해되면서, 구사일생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

이 사태는 육군 내부의 파벌 싸움인 황도파와 통제파의 대립에서 기인했다. 천황의 친정을 주장하며 급진적 개혁을 원했던 황도파 청년 장교들은 대공황 이후 도탄에 빠진 농촌 현실과 기득권층의 부패를 무력으로 타파하고자 했다. 이들은 천황의 직접 통치가 실현되면 모든 사회적 모순이 해결될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보였다.

하지만 쇼와 천황은 자신의 측근들을 살해한 반란군에 대해 "내 수족을 끊어놓았다"며 극도의 분노를 표했다. 결국 천황의 단호한 진압 명령에 따라 반란군은 '반역군'으로 규정됐다. 29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본대로 복귀하라"는 투항 권고 문구와 함께 반란은 나흘 만에 막을 내렸다. 주동자들은 신속하게 처형됐다.

2·26 사건은 역설적으로 일본 군국주의를 완성하는 계기가 됐다. 반란을 일으킨 황도파는 숙청됐으나, 이를 빌미로 통제파 군인들이 국정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군부의 허락 없이는 내각 구성이 불가능해지는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가 부활하며 의회 정치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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