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성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필자 제공)
베이징의 유아원과 서울의 유치원. 국경과 언어는 다르지만, 아이들의 숨소리에는 기묘한 공통점이 흐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시험지 위에서 정답만 쫓던 '인적 자원'들이 이제는 타인의 손을 잡고 '인간'의 온기를 회복하고 있다. 동북아 교육 패러다임이 '성취'에서 '존엄'으로, '경쟁'에서 '공생'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규격화된 엔진'에서 '정서적 호흡권'으로
오랜 시간 한국의 수능과 중국의 가오카오(高考)는 국가 성장의 강력한 엔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개별적인 영혼을 '수치화된 등급'이라는 규격 속에 가두는 부작용을 낳았다. 타인은 '함께 살 이웃'이 아닌 '넘어서야 할 적'으로 치부됐다.
최근 중국의 '쌍감(雙減) 정책'은 국가가 강제로라도 아이들에게 '정서적 호흡권'을 돌려주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이다. 사교육의 굴레를 벗겨낸 자리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친구의 눈물을 닦아줄 시간을 얻었다.
한국 역시 '2019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공감'과 '자기 주도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답 맞히는 기계가 아닌,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연대하는 인격체로 대우하겠다는 성찰의 결과다.
농촌 유학 온 학생들.(강원도교육청 제공)(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나'를 찾는 한국 vs '우리'를 빚는 중국…문화적 변주곡
흥미로운 점은 공생을 구현하는 양국의 '문화적 방법론' 차이다.
한국은 '개별화된 자율성'으로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발견하고 관계를 설계하도록 돕는다. 교사는 지시자가 아닌 '관찰자'로 머물며 내면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린다. 놀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상향식 공감이다.
중국은 '공동체적 조화'로 유구한 전통 가치인 '화'(和)를 현대 교육에 녹여낸다. '나'라는 존재가 '우리'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방과 후 활동을 통해 집단 속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구조적 공감을 연습한다.
상하이 서예 교실의 묵향(墨香) 속에서 자제력을 배우는 아이와, 한국 학교에서 흙을 만지며 생명을 배우는 아이는 결국 같은 문법을 익히고 있다. 타자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자원을 내놓는 '사회적 창의성'이다.
"AI 시대, 유일한 무기는 공명(共鳴)"…부모 인식 변화
물론 입시라는 거대 담론은 여전히 교실을 압도한다. 하지만 부모들의 인식은 이미 '지각변동' 중이다. 영어 단어 하나에 일희일비하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내 아이가 친구의 아픔에 공명하는 모습에서 더 큰 '생애적 효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이 지식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의 유일한 비교우위는 '타자의 슬픔에 공명하고 연대하는 능력'뿐이다. 이제 교육은 '능력 있는 경쟁자'가 아닌 '함께 살 만한 이웃'을 길러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생의 정원으로 나아가는 길
결국 한·중 양국의 교육적 전회는 아이들을 다시 '존엄한 인간'으로 되돌려놓겠다는 인류학적 선언이다. 한국의 자율과 중국의 조화가 각자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뿌리 내릴 때, 동북아의 미래는 경쟁의 전장이 아닌 '풍요로운 공생의 정원'이 될 것이다.
시험지의 정답보다 친구의 마음을 읽어내는 '마음의 정답'에 박수를 보내는 사회. 아이들은 이미 준비가 됐다. 이제 어른들의 역할은 명확하다. 아이들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공생의 언어를 익힐 수 있도록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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