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스트 무소륵스키 (출처: Рузана Ширинян, 1876,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39년 3월 21일, 러시아 프스코프주 카레보에서 러시아 국민악파의 거두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가 태어났다. 러시아만의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무소륵스키는 본래 근위대 장교의 길을 걸었으나,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는 러시아 5인조(The Five)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적인 것'에 몰두했다.특히 러시아 민요의 선율과 정교회의 성가, 그리고 러시아 민중의 투박한 언어적 특성을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무소륵스키의 가장 큰 업적은 '음악적 리얼리즘'의 구현이다. 그는 인간의 말소리가 지닌 고유의 억양과 감정을 선율로 변환하는 '낭송조'(Recitative)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드는 것을 넘어, 인간 내면의 진실과 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개인의 비극과 민중의 역동성을 결합한 걸작으로, 러시아 역사극의 정점으로 불린다. 또한 친구인 화가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은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은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화하는 탁월한 묘사력을 보여 줬으며,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은 그만의 거칠고 원초적인 관현악법을 잘 드러낸다.
그의 음악은 당대에는 '미완성'이라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화성학적 규칙을 파괴한 불협화음과 변격적인 리듬은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파격적인 시도는 훗날 드뷔시와 라벨 등 인상주의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20세기 현대 음악의 지평을 여는 밑거름이 됐다.
무소륵스키는 알코올 중독과 빈곤 속에서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러시아의 소리'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공연장에서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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