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애도하는 세상, 인간은 무엇일까"…연극 ‘뼈의 기록’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4월 09일, 오전 12:07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인공지능(AI)과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궁극적으로 남는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이를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기 위해 로봇을 등장시켰죠.”

천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뼈의 기록’을 연출한 장한새는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로봇은 과거 인간을 바깥에서 관찰하는 존재였다면, 이제는 오히려 우리를 투영하는 거울에 가깝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천 작가의 ‘천 개의 파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무대화한 장 연출이 세 번째 협업에 나섰다. 그는 “원작 속 세계는 따뜻한 로봇이 필요할 만큼 차가운 곳이었다”며 “이번 무대에서는 관객들이 그 차가운 세상을 체감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고 강조했다.

천 작가는 “무대화 과정에서 캐릭터 성격이 바뀌면 원작과 멀어지기 쉽다”면서 “이번 작품은 원작의 톤과 무드를 해치지 않으면서 기대했던 장면들을 더 인상적으로 살렸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연극 ‘뼈의 기록’의 원작자 천선란 작가(왼쪽)와 장한새 연출(사진=예술의전당).
◇죽음을 모르는 존재, 인간의 삶을 기록하다

‘뼈의 기록’은 천선란 작가의 ‘로봇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인류의 행성 이주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미래를 배경으로, 지하 영안실에서 시신을 염하는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비춘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기록한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고독사한 노인, 스스로 생을 마감한 무용수, 사고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소년까지, 로비스는 다양한 죽음의 순간을 배웅한다. 그는 뼈에 남은 굴곡과 흔적을 통해 망자의 삶을 읽어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천선란 작가는 “사후세계가 있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하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죽음을 바라본다”며 “결국 죽음은 인간이 지구의 한 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만큼, 무대는 하나의 관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장 연출은 “원작이 독자에게 죽음을 깊이 고민하게 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애도가 부재한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연극에는 원작에 없는 2085년의 세계관도 추가됐다. 장 연출은 “원작이 50페이지 분량의 짧은 소설인 만큼, 연극으로 확장하기 위해 서사를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며 “행성 이주 프로젝트가 성공한 이후 폐행성이 된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설정을 추가해 연극만의 재미를 살렸다”고 말했다.

연극 ‘뼈의 기록’(사진=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기술의 발전은 이제 로봇과 공존하는 삶을 낯설지 않게 만들었다. 장 연출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지 묻게 된다”며 “세상이 점점 고독하고 쓸쓸해지면서 로봇이 등장하게 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더 즐겁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란다”며 “로봇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관객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로비스’ 역에는 강기둥·장석환·이현우가 트리플 캐스팅됐다. 정운선·강해진은 ‘로비스’에게 삶의 온기를 전하는 ‘모미’ 역 등을 연기한다. 공연은 5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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