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는 공포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장 조던 필 감독이 직접 엄선한 단편 소설 19편을 담았다. 수록작 다수는 노예제와 시민운동, 경찰 폭력처럼 미국 사회에 깊이 박힌 불의의 역사 자체를 공포의 원천으로 끌어온다.
영화 '겟 아웃', '어스', '놉'을 통해 공포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장 조던 필 감독이 직접 엄선한 단편 소설 19편을 담은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블랙 호러'(Black Horror)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인종 차별과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현실의 공포를 초자연적 존재와 기묘한 사건들에 투영해 독특한 서늘함을 선사한다.
'블랙 호러'(Black Horror)는 주로 흑인의 경험, 문화, 인종차별적 공포를 중심 주제로 다루는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
이 책은 조던 필이 엮은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다. 황금가지가 펴낸 한국어판에는 N. K. 제미신, 은네디 오코라포르, P. 젤리 클라크를 비롯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베테랑 작가와 떠오르는 신예 작가들까지 한데 실렸다.
책의 핵심은 공포를 초자연적 장치에만 가두지 않는 데 있다. 수록작 다수는 노예제와 시민운동, 경찰 폭력처럼 미국 사회에 깊이 박힌 불의의 역사 자체를 공포의 원천으로 끌어온다. 현실의 폭력과 억압이 괴물과 저주, 기현상으로 번역되면서 낯선 서늘함이 더 짙어진다.
예를 들어서, 대표작 '건방진 눈빛'은 인간의 눈이 달린 단속 차량과 흑인 부패 경찰의 타락을 그린다. '그 승객'은 1961년 '프리덤 라이드' 운동을 배경으로, 인종 분리 정책을 규탄하러 떠난 자매가 기묘한 존재와 맞닥뜨리는 여정을 따라간다. '노우드의 소란'은 남북전쟁 뒤 해방된 흑인들이 세운 도시를 둘러싼 갈등을 마법과 함께 밀어 올린다.
상상력의 영역도 넓다. 아이티를 배경으로 한 인어 이야기 '라시렌', 나이지리아의 토착 악령이 미국의 집까지 따라오는 '어두운 집', 카리브해 괴물의 저주를 다룬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자 주술사'가 서로 다른 문화권의 공포를 불러낸다. 생소한 민담과 토착 신앙이 현대 장르 문법과 엮이며 앤솔러지의 결을 다채롭게 만든다.
SF 문법을 앞세운 작품들도 눈에 띈다. '아기 강탈자들의 침공'은 가임기 여성의 몸에 침투하는 외계종을 통해 인류의 위기를 그린다. '탐미주의자'는 유전자 조작 생명체가 유희거리로 소비되는 세상을, '네가 행복한 장소'는 인간 두뇌를 기계에 연결한 형무소 프로젝트를 통해 비자발적 노예 상태를 비튼다.
조던 필의 이름이 이 책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의 영화 세계와 문제의식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열광한 흑인 관객과 창작자들에게서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목격했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 밖으로 나오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공포 장르 안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그런 변화의 흐름을 한 권에 압축한 결과물이다.
이 앤솔러지는 로커스상, 브램 스토커상, 영국환상문학상을 석권했다. "올해 최고일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할 앤솔러지"라는 평가가 따라붙은 이유도, 공포를 단순한 오락거리로 다루지 않고 현실의 상처와 역사적 기억을 정면에서 응시했기 때문이다.
△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 조던 필 엮음/ 이나경 옮김/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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