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서울 남대문 아동복 거리의 브루뎅 매장에서 만난 소비자 이 모(32)씨의 손에는 티셔츠 3장과 바지 2장이 들려 있었다. 이렇게 사고 지불한 금액은 총 15만원. 백화점이라면 티셔츠 한 장 겨우 샀을 돈이다.
10일 오전 남대문 아동복 거리 브루뎅 매장에 방문객들이 몰려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최근 남대문 아동복 거리에는 인스타그램이나 맘 카페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본 제품 사진을 들고 매장을 찾는 젊은 부모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들은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사진을 상인에게 보여주며 원하는 디자인을 찾고, 원단과 마감 상태를 직접 확인한 뒤 구매를 결정한다.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소재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서고, 반대로 품질과 취향이 맞으면 한꺼번에 여러 벌을 구매하는 식이다.
과거 프리미엄 브랜드 위주로 쏠리던 ‘골드키즈’ 현상은 최근 실용성과 개성 및 가치관, 가격 적정성을 꼼꼼히 골라 소비하는 ‘픽 키즈(Pick Kids)’ 트렌드로 옮겨가고 있다.
이 중심에는 육아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직접 검색하고 검증하는 MZ세대 부모의 ‘베이비디깅(아이와 채굴의 합성어)’ 소비가 있다. 본인의 평소 쇼핑 행태를 자녀 옷장에도 그대로 이식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SNS에서 ‘아는 엄마들만 아는 곳’으로 입소문이 난 남대문 자체 브랜드 매장들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수진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MZ세대는 무조건 가장 싼 제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품질이 담보된 진짜 가성비에 집중한다”며 “브랜드 인지도가 낮더라도 개인이 판단하기에 괜찮은 제품이라면 구매로 이어지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80년대생 ‘큰손’ 40대 vs 90년대생 ‘실속’ 30대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초반 태어난 ‘2차 에코붐 세대’ 등 젊은 층이 출산의 주축이 된 영향이 크다. 통계청이 발표한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에서 2024년 0.75명으로 반등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0.80명을 기록했다. 연령별 출산율은 30대 초반이 가장 높고, 30대 후반과 20대 후반이 그 뒤를 이었다. 디지털에 익숙한 이들이 유아동 상품 시장의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패션 소비 실태조사(2025년 3월~2026년 2월)’에 따르면, 가족 착용 목적의 유아동복 시장 규모는 1조 89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중 30대와 40대 부모의 월평균 구매 개수는 2.7개로 똑같았다. 하지만 연간 소비 총액은 40대(9600억원)가 30대(5700억원)보다 68.4%나 많았다. 반면 월평균 구매율은 30대(43.2%)가 40대(37.2%)를 앞섰다. 즉, 30대는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자주 사고, 40대는 단가가 높은 고가 브랜드를 한 번에 지르는 성향이 짙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수진 연구위원은 “40대에 해당하는 전기 밀레니얼 부모 세대(1980년대 초중반생)가 자녀 한 명에게 고가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1990년대 중심의 후기 밀레니얼과 Z세대 부모들은 브랜드명보다 소재나 디자인, 활용도를 더 꼼꼼히 따지는 성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만혼·만산 트렌드로 인해 고소득층이 40대 부모 구간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40대의 지출 단가가 높아진 ‘코호트 이동(같은 시대를 경험한 출생 집단이 나이를 먹으면서 연령대 자체의 특성이 바뀌는 현상)’ 효과도 이러한 격차를 벌린 주원인으로 꼽힌다.
◇등원룩은 가성비, 외출복은 프리미엄…용도별 분화 뚜렷
그렇다고 30대 MZ 부모들이 ‘무조건 가성비’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상황과 용도에 따른 철저한 ‘TPO(시간·장소·상황) 분리 소비’에 있다. 평소 어린이집에 갈 때 입는 등원룩이나 실내복은 스파오·탑텐 등 SPA 브랜드나 남대문 보세 매장에서 합리적으로 구매하되, 특별한 날이나 사진 촬영을 위한 외출복은 한 벌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택한다.
10일 남대문 아동복 거리의 한 매장에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눈높이가 높은 MZ 부모들이 소비 주축이 되면서 향후 유아동복 업계는 ‘독보적인 프리미엄’과 ‘품질이 검증된 가성비’라는 두 축으로 완벽히 양극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특별한 날을 위한 고가 제품 수요는 유지되면서도, 일상복 영역에서는 소재와 실용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어설픈 중저가 상품군부터 빠르게 도태될 것”이라며 “결국 까다로워진 MZ 부모들의 검증을 통과하는 브랜드만이 롱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남대문 아동복 매장의 한 관계자도 “요즘 MZ 부모들은 디자인만 예쁘다고 사지 않고, 옷 안쪽의 바느질 마감 상태나 면 혼용률 택(tag)부터 확인할 정도로 매섭고 꼼꼼하다”며 “소비자들의 안목이 워낙 높아진 탓에 기획 단계부터 인스타 감성의 트렌디한 디자인과 탄탄한 소재를 신경 쓰지 않으면 남대문에서도 살아남기 힘들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