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 내부에 전시된 백범 김구 흉상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안에 자리한 경교장. 광복 뒤 환국한 백범 김구가 머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활동한 곳으로,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서거한 장소이기도 하다.
경교장 1층 응접실에서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회의와 국내외 인사 접견 등이 이뤄졌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이면 경교장에 닿는다. 1938년 한 금광업자가 지은 서양식 저택으로 처음 이름은 ‘죽첨장’이었다. 광복 뒤 김구가 거처로 삼으면서 인근 다리 이름을 따 경교장으로 바꿨다. 김구가 머문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까지 이곳은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역할을 했다. 당시 국무위원회도 여기서 열렸고 미군정 관계자와 국내외 인사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건물은 2층 규모이지만 이 집이 품은 역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강북삼성병원 건물 사이에 자리한 경교장. 대형 병원 한가운데 1938년 지어진 건물이 남아 있어 주변 풍경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김구가 경교장에 든 것은 1945년 11월 23일, 광복 100일째 되던 날이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상하이·항저우·창사·충칭을 옮겨 다니며 임시정부와 함께한 지 27년 만의 귀국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공식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돌아와야 했고, 조국에는 이미 분단선이 그어져 있었다.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서는 것을 막으려 했던 그는 1948년 통일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까지 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 그는 경교장에서 생을 마쳤다. 27년을 떠돌다 돌아온 조국에서,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채 4년이 되지 않았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자리한 백범 김구 묘소. 광복 뒤 동지들의 유해를 효창원에 모셨던 김구도 1949년 이곳에 안장됐다.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와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나란히 조성돼 있다.
경교장을 나서 대중교통으로 20~30분을 가면 용산 ‘효창공원’에 닿는다. 병원 건물에 둘러싸인 경교장과 달리 이곳은 나무와 산책로가 이어지는 숲이다. 본래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를 비롯한 왕실 가족의 묘가 있던 효창원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왕실 묘가 옮겨진 뒤 광복 후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조성됐다. 일제는 이곳에 골프장과 유원지를 조성해 왕실 묘역의 격을 허물기도 했는데, 광복 후 독립유공자들의 안식처가 됐다는 점에서 공간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김구가 광복 후 서둘러 추진한 일 가운데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난 동지들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는 일이었다. 1946년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세 의사의 유해가 일본과 중국에서 돌아왔다.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뒤 사형당했고,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로 붙잡혀 숨졌으며, 백정기는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옥중에서 순국했다. 세 사람 모두 광복을 보지 못했다. 유해 봉환 당시 김구는 직접 장례위원장을 맡아 국민장에 준하는 예를 갖췄다고 전해진다.
여행면 사진
효창공원에 세워진 백범 김구 기념 시계탑. 비석에는 김구가 남긴 글이 새겨져 있다.
묘역에서 길을 따라가면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차리석·조성환의 묘가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김구의 묘에 닿는다. 1946년 동지들을 효창공원에 모신 김구도 3년 뒤 이곳에 묻혔다. 묘는 낮은 봉분과 몇 점의 석물이 전부일 만큼 단출하다. 화려한 치장 대신 소나무 몇 그루가 묘 뒤를 두르고 있을 뿐인데, 생전 그가 지향했던 검소함과도 닮아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묘 바로 아래 산책로에서는 주민들이 걷고 아이들이 뛰노는 일상의 풍경이 펼쳐져, 역사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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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기념관 중앙홀에 놓인 김구 좌상. 뒤편으로 태극기가 펼쳐져 있다.
효창공원 묘역에서 내려오면 ‘백범김구기념관’이다. 상설전시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소년 김창암 시절부터 동학·의병 활동,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 한국광복군, 환국 이후의 삶으로 이어진다. 전시실을 따라가면 동학농민운동에 뛰어든 청년이 스무 해 넘게 임시정부를 지키며 독립을 준비한 과정이 시대순으로 펼쳐진다. 삼의사 묘역부터 김구 묘를 거쳐 기념관까지 둘러보는 데는 1시간 30분~2시간이 걸린다.
‘백범’(白凡)이라는 호에는 가장 낮은 신분이었던 백정과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범부의 뜻이 담겼다. 신분과 계층을 넘어 모든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의지였다. 『백범일지』 말미의 ‘나의 소원’에는 그가 꿈꾼 나라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남을 압도하는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나라였다. 그가 바란 것은 가장 강한 나라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나라’였다.
백범김구기념관 상설전시실. 1876년 출생부터 1949년 서거까지 김구의 생애와 독립운동 행적을 시기별로 소개한다.
백범김구기념관 전시실에 마련된 김구 가족 관련 전시. 중앙의 곽낙원 여사 조형물을 비롯해 김구와 가족들의 흉상과 자료가 전시돼 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도 김구 탄생 150주년 특별전 ‘백범의 생각과 뜻, 온 세상을 비추다’가 15일부터 12월 13일까지 열린다. 서울에서의 답사를 마친 뒤, 별도 일정으로 천안까지 발걸음을 넓혀보는 것도 김구의 생애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여행메모
△ 추천 동선=경교장(30~40분) → 효창공원(1시간~1시간30분) → 백범김구기념관(30~40분), 총 3시간30분 안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