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오늘, 우리에게 다시 묻다[여행]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14일, 오전 05:02

[서울=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의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을 지나 병원 건물 사이로 들어서면 2층짜리 서양식 주택 한 채가 나타난다. ‘경교장’이다. 27년의 망명 끝에 조국으로 돌아온 백범 김구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이자, 광복 직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활동 거점이었던 공간이다. 병원의 소음과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도 이 집만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올해로 김구 탄생 150주년. 광복 81주년을 맞아 경교장에서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으로 이어지는 그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경교장 내부에 전시된 백범 김구 흉상
경교장 내부에 전시된 백범 김구 흉상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안에 자리한 경교장. 광복 뒤 환국한 백범 김구가 머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활동한 곳으로,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서거한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안에 자리한 경교장. 광복 뒤 환국한 백범 김구가 머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활동한 곳으로,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서거한 장소이기도 하다.
경교장 1층 응접실에서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회의와 국내외 인사 접견 등이 이뤄졌다.
경교장 1층 응접실에서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회의와 국내외 인사 접견 등이 이뤄졌다.
◇병원 한복판에 남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이면 경교장에 닿는다. 1938년 한 금광업자가 지은 서양식 저택으로 처음 이름은 ‘죽첨장’이었다. 광복 뒤 김구가 거처로 삼으면서 인근 다리 이름을 따 경교장으로 바꿨다. 김구가 머문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까지 이곳은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역할을 했다. 당시 국무위원회도 여기서 열렸고 미군정 관계자와 국내외 인사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건물은 2층 규모이지만 이 집이 품은 역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강북삼성병원 건물 사이에 자리한 경교장. 대형 병원 한가운데 1938년 지어진 건물이 남아 있어 주변 풍경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강북삼성병원 건물 사이에 자리한 경교장. 대형 병원 한가운데 1938년 지어진 건물이 남아 있어 주변 풍경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현관을 지나면 응접실과 귀빈식당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면 김구의 집무실과 침실이 이어진다. 격동의 현대사가 논의됐던 곳치고는 소박한 규모다. 벽에 걸린 옛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이 작은 공간이 감당했던 무게가 새삼 실감 난다. 2층 집무실 창문에는 1949년 6월 26일 김구 피살 당시의 총탄 흔적이 재현돼 있다. 이날 육군 소위 안두희가 이 방에서 김구에게 총을 쐈다. 광복을 맞은 지 4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사건 직후 안두희는 현장에서 체포됐지만 이후 석방과 감형을 거듭했고, 그 배후를 둘러싼 논란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현대사의 의문으로 남아 있다.

김구가 경교장에 든 것은 1945년 11월 23일, 광복 100일째 되던 날이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상하이·항저우·창사·충칭을 옮겨 다니며 임시정부와 함께한 지 27년 만의 귀국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공식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돌아와야 했고, 조국에는 이미 분단선이 그어져 있었다.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서는 것을 막으려 했던 그는 1948년 통일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까지 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 그는 경교장에서 생을 마쳤다. 27년을 떠돌다 돌아온 조국에서,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채 4년이 되지 않았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자리한 백범 김구 묘소. 광복 뒤 동지들의 유해를 효창원에 모셨던 김구도 1949년 이곳에 안장됐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자리한 백범 김구 묘소. 광복 뒤 동지들의 유해를 효창원에 모셨던 김구도 1949년 이곳에 안장됐다.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와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나란히 조성돼 있다.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와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나란히 조성돼 있다.
◇먼저 돌아온 동지들, 채워지지 않은 한 자리

경교장을 나서 대중교통으로 20~30분을 가면 용산 ‘효창공원’에 닿는다. 병원 건물에 둘러싸인 경교장과 달리 이곳은 나무와 산책로가 이어지는 숲이다. 본래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를 비롯한 왕실 가족의 묘가 있던 효창원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왕실 묘가 옮겨진 뒤 광복 후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조성됐다. 일제는 이곳에 골프장과 유원지를 조성해 왕실 묘역의 격을 허물기도 했는데, 광복 후 독립유공자들의 안식처가 됐다는 점에서 공간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김구가 광복 후 서둘러 추진한 일 가운데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난 동지들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는 일이었다. 1946년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세 의사의 유해가 일본과 중국에서 돌아왔다.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뒤 사형당했고,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로 붙잡혀 숨졌으며, 백정기는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옥중에서 순국했다. 세 사람 모두 광복을 보지 못했다. 유해 봉환 당시 김구는 직접 장례위원장을 맡아 국민장에 준하는 예를 갖췄다고 전해진다.

여행면 사진
여행면 사진
효창공원에 세워진 백범 김구 기념 시계탑. 비석에는 김구가 남긴 글이 새겨져 있다.
효창공원에 세워진 백범 김구 기념 시계탑. 비석에는 김구가 남긴 글이 새겨져 있다.
삼의사 묘역에는 봉분이 네 개 있다. 세 곳에는 세 의사가 잠들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1910년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해, 훗날을 위해 비워둔 자리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광복 81년이 지났지만 이 봉분은 여전히 비어 있다. 정부와 학계는 지금도 뤼순 인근에서 유해 발굴 조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관람객들은 이 빈 봉분 앞에서 유독 오래 발걸음을 멈춘다.

묘역에서 길을 따라가면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차리석·조성환의 묘가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김구의 묘에 닿는다. 1946년 동지들을 효창공원에 모신 김구도 3년 뒤 이곳에 묻혔다. 묘는 낮은 봉분과 몇 점의 석물이 전부일 만큼 단출하다. 화려한 치장 대신 소나무 몇 그루가 묘 뒤를 두르고 있을 뿐인데, 생전 그가 지향했던 검소함과도 닮아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묘 바로 아래 산책로에서는 주민들이 걷고 아이들이 뛰노는 일상의 풍경이 펼쳐져, 역사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여행면 사진
여행면 사진
백범김구기념관 중앙홀에 놓인 김구 좌상. 뒤편으로 태극기가 펼쳐져 있다.
백범김구기념관 중앙홀에 놓인 김구 좌상. 뒤편으로 태극기가 펼쳐져 있다.
◇탄생 150년, 다시 조명되는 ‘나의 소원’

효창공원 묘역에서 내려오면 ‘백범김구기념관’이다. 상설전시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소년 김창암 시절부터 동학·의병 활동,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 한국광복군, 환국 이후의 삶으로 이어진다. 전시실을 따라가면 동학농민운동에 뛰어든 청년이 스무 해 넘게 임시정부를 지키며 독립을 준비한 과정이 시대순으로 펼쳐진다. 삼의사 묘역부터 김구 묘를 거쳐 기념관까지 둘러보는 데는 1시간 30분~2시간이 걸린다.

‘백범’(白凡)이라는 호에는 가장 낮은 신분이었던 백정과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범부의 뜻이 담겼다. 신분과 계층을 넘어 모든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의지였다. 『백범일지』 말미의 ‘나의 소원’에는 그가 꿈꾼 나라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남을 압도하는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나라였다. 그가 바란 것은 가장 강한 나라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나라’였다.

백범김구기념관 상설전시실. 1876년 출생부터 1949년 서거까지 김구의 생애와 독립운동 행적을 시기별로 소개한다.
백범김구기념관 상설전시실. 1876년 출생부터 1949년 서거까지 김구의 생애와 독립운동 행적을 시기별로 소개한다.
백범김구기념관 전시실에 마련된 김구 가족 관련 전시. 중앙의 곽낙원 여사 조형물을 비롯해 김구와 가족들의 흉상과 자료가 전시돼 있다.
백범김구기념관 전시실에 마련된 김구 가족 관련 전시. 중앙의 곽낙원 여사 조형물을 비롯해 김구와 가족들의 흉상과 자료가 전시돼 있다.
김구 탄생 150주년을 맞은 올해는 유네스코 기념해이기도 하다. 경교장에서는 국가유산청과 서울역사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 ‘백범 김구, 세계의 가치가 되다’가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김구가 환국한 뒤 경교장에 정착해 『나의 소원』을 집필하고, 분단을 막기 위해 1948년 평양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던 과정 등을 조명한다. 별도의 전시장을 찾아갈 필요 없이 경교장 관람 동선에서 함께 볼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도 김구 탄생 150주년 특별전 ‘백범의 생각과 뜻, 온 세상을 비추다’가 15일부터 12월 13일까지 열린다. 서울에서의 답사를 마친 뒤, 별도 일정으로 천안까지 발걸음을 넓혀보는 것도 김구의 생애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여행메모

△ 추천 동선=경교장(30~40분) → 효창공원(1시간~1시간30분) → 백범김구기념관(30~40분), 총 3시간30분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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