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바·젤라테리아·호텔… '리터닝 군산'이 바꿔놓은 군산의 풍경[여행]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21일, 오전 05:01

[군산(전북)=이데일리 김은아 기자] 8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군산 영화동 골목의 파란 네온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재즈클럽 머디’에서 공연이 열리는 날임을 알리는 불빛이었다. 영화동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근대건축물과 1970년대 주택이 뒤섞인 동네다. 철물점과 건강원의 낡은 간판 사이로 파란 네온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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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까지 한참 남았지만 클럽은 이미 만석이었다. 재즈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공연 몇 주 전 예약하지 않으면 테이블 좌석을 잡기 어렵다고 했다. 객석에는 외국인 관객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이날 무대에는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네이트 리치 트리오’가 올랐다. 멤버들은 할리우드에 있는 음악대학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I)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역 뮤지션들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최우수 연주 부문을 수상한 기타리스트 찰리 정이 협연했다. 재즈와 펑크, 블루스, 록을 넘나드는 연주에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앙코르가 거듭되면서 공연은 예정 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넘기고서야 끝났다.

재즈바·젤라테리아·호텔… '리터닝 군산'이 바꿔놓은 군산의 풍경[여행]
공연 뒤 만난 찰리 정은 “공간 디자인과 장비, 음향과 조명 설계는 한국 최고 수준”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뮤지션과 관객이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공연장만의 디테일이 필요한데, 재즈클럽 머디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객석에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머디에서 열린 공연은 음반으로도 남았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는 이곳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첫 라이브 음반 ‘말로 라이브 앳 머디’로 지난 2월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보컬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선정위원회는 “피아노 줄의 긴장까지 포착한 녹음”이라며 현장의 소리를 담아낸 녹음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다. 올 하반기에는 박재홍 밴드와 한상원 밴드, 마리아킴 등이 머디 무대에 설 예정이다.

◇100년 된 건물에서 만난 ‘장인’의 손맛

군산은 짬뽕과 팥빵, 일본식 가옥으로 익숙한 도시다. 그런 군산의 원도심에 재즈클럽 ‘머디’가 들어섰다. 여기에 레스토랑과 젤라테리아, 바, 호텔이 더해졌다. 1980㎡(약 600평) 부지에 9개 시설이 모인 복합문화공간 ‘리터닝 군산’이다.

리터닝 군산이라는 이름에는 한때 번성했던 군산 원도심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재즈 피아노를 전공한 송성진 대표에게는 원도심에 근사한 재즈클럽을 열겠다는 오랜 꿈이 있었다. 그는 2019년 영화동 부지를 매입했다. 긴 설계와 공사를 거쳐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설을 차례로 열었다.

리터닝 군산은 옛 건물을 밀어내지 않았다. 1920년대에 지어진 목조 가옥과 1960~1970년대 건물, 2020년대 신축 건물이 한 부지 안에 공존한다. 이 부지 하나에서 100여 년에 걸친 건축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설계를 맡은 손진 건축가는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재료를 최대한 살렸다. 20세기 초 창고를 고쳐 만든 이탈리아 레스토랑 ‘파라디소90’이 대표적이다. 서까래마다 번호를 매겨 건물을 해체한 뒤 다시 쓸 수 없는 목재만 새 부재로 바꿔 원래 형태대로 재조립했다. 전통 목조건축을 수리할 때 쓰는 해체 수리 방식이다.

파라디소90의 대표 메뉴는 봉골레 파스타와 정어리 스튜다. 봉골레에는 군산 일대에서 캔 씨알 굵은 바지락이 넉넉하게 들어간다. 이탈리아식 정어리 스튜는 칼칼한 맛이 특징이다. 곁들여 나오는 포카치아는 결이 부드럽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서울 이태원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 ‘트레비아’를 운영하며 ‘포카치아 장인’으로 이름을 알린 손진아 셰프의 솜씨다. 손 셰프는 리터닝 군산에 합류하기 위해 15년 넘게 운영한 레스토랑의 문을 닫고 군산으로 이주했다.

젤라테리아와 바에도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했다. ‘카카오봄’의 고영주 대표와 ‘코블러’의 유종영 대표가 각각 젤라테리아와 바의 기술 전수를 맡았다. 두 사람은 각각 초콜릿·젤라토와 칵테일 분야에서 국내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최근에는 부산의 로스터리 ‘까사오로’가 합류해 커피를 맡았다.

재즈바·젤라테리아·호텔… '리터닝 군산'이 바꿔놓은 군산의 풍경[여행]
◇‘핫플’보다 도시의 오랜 이웃처럼

리터닝 군산의 색과 이름은 영화동에서 가져왔다. 건물 곳곳에 쓰인 적갈색과 푸른색은 원도심의 오래된 건물과 슬레이트 지붕에서 뽑았다. 낡은 건물과 새 건물이 한 골목 안에서 크게 겉돌지 않는 이유다.

레스토랑 ‘파라디소90’과 젤라테리아 ‘노베오’는 영화동의 도로명인 ‘구영길’을 숫자 9와 0으로 풀어 이름을 붙였다. 재즈클럽 ‘머디’라는 이름에는 군산 앞바다 갯벌의 이미지가 담겼다.

리터닝 군산은 문을 연 뒤에도 요란한 홍보를 삼갔다. 송 대표는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렸다 빠져나가는 ‘핫플’보다 동네 주민이 먼저 찾는 공간을 원했다. 여행자와 주민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도시의 사랑방이 리터닝 군산이 지향하는 모습이다.

머스터드색 외벽의 호텔 인그리드는 영화동 골목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24개 객실은 위치와 창 방향에 따라 구조와 인테리어가 모두 다르다. 리터닝 군산의 상징색인 적갈색 타일로 욕실을 꾸민 방이 있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창을 낸 방도 있다. 샤워부스 천장에 창을 내 하늘이 보이도록 만든 객실도 있다.

소품 역시 객실마다 달리 골랐다. 빈티지 컵과 디자인 의자, 작가의 그림이 각각의 방에 맞춰 놓여 있다. 이름난 디자이너의 가구와 작가 작품을 두고도 브랜드와 작품명을 알려주는 표시는 달지 않았다.

리터닝 군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정유미 이사는 “호텔은 철저히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각주’를 다는 순간 설명이 따라붙는 불편한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영화동의 낮은 지붕과 오래된 골목이 들어온다. 호텔 문을 나서면 철물점과 건강원의 낡은 간판이 다시 이어진다. 해가 지면 머디의 파란 네온이 켜지고 클럽 안에서는 연주가 시작된다. 여행자는 이 골목에서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하룻밤을 묵는다. 한때 발길이 뜸했던 영화동에 사람들이 다시 머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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