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앙상블은 세계 각지의 오케스트라, 특히 독일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단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단체다. 이런 이력은 보통 소개 글에 머무는 말이지만, 이날은 첫 곡에서부터 소리로 느껴졌다. 10년을 함께한 단체답게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휘자 없는 챔버 오케스트라에서 템포가 바뀌는 순간은 늘 위험한 지점인데, 이지혜 악장의 리드는 그 지점들을 안정적으로 통과시켰다. 악장이 몸짓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단원들이 합의된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함께 움직이는 단계에 와 있었다. 다만 이탈리아 모음곡에서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이 곡은 고전미를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익살의 음악이다.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힌 대신 지나치게 정돈돼 있었다.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에 비해 제2바이올린과 첼로의 목소리가 소극적으로 들렸고, 예상을 비트는 순간이 몇 번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
이어진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C장조는 듣는 이에게는 아름답지만 첼리스트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곡이다. 반주가 얇아 독주의 음정과 음색이 그대로 노출된다. 연주자들 사이에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들이 ‘발가벗겨지는 곡’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협연자로 나선 배지혜 첼리스트는 1악장에서부터 대단한 전달력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음 하나하나를 과하게 부풀리지 않고 프레이즈의 방향을 지켜나갔고, 비브라토와 다이내믹을 조절해 고전주의 어법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작곡가를 존중하는 태도가 분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다. 간혹 솔리스트가 흔들리는 순간에는 투티가 소리의 방향을 함께 잡으며 흐름을 지켰다. 투티는 솔리스트를 듣고 솔리스트는 투티에 귀 기울이는 경청이 고스란히 소리의 결과물로 드러났다. 협주곡을 독주와 반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실내악으로 대하는 태도도 느껴졌다.
후반부의 뮤즈를 인도하는 아폴론은 봄의 제전이나 불새 같은 초기 발레의 명성에 가려 자주 연주되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스트라빈스키의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이 곡을 꼽는다. 이 곡을 메인에 놓은 선택부터가 이 앙상블의 안목을 말해주는데, 실제로도 발트앙상블이 만들어가는 사운드에 잘 들어맞는 곡이었다. 관악기도 타악기도 없이 현의 음색만으로 30분을 끌고 가야 하는 곡이다. 그런데 ‘숲’(Wald)이라는 이름의 앙상블은 그 조건에서 묵묵히 자기 소리를 냈다. 바이올린은 위쪽 공간을 시원하게 열었고, 비올라는 담담하면서도 분명하게 중간을 채웠으며, 첼로와 베이스는 선명하고 무게감 있게 바닥을 받쳤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서도 연주는 빈틈이 없었다. 아폴론의 탄생을 그리는 서주는 부점 리듬으로 위엄을 만들었고, 세 뮤즈의 변주는 성격 차이를 뚜렷이 구분했다. 파드되에서는 이 앙상블의 장점인 현의 노래가 가장 잘 들렸고, 마지막 신격화 부분에서는 소리를 키우는 대신 저음 위에서 차분히 상승하다가 밀도를 조금씩 덜어내 긴 여운을 만들며 끝났다. 이 곡을 실연으로, 이만한 완성도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국내에서 흔치 않다.
모든 곡이 끝나고 돌아보면 이날의 연주는 작곡가를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귀를 열고 대화하는 연주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은 하나, 발트앙상블만의 색깔은 무엇인가였다. 그 답은 의외로 앙코르에서 나왔다. 풀치넬라와 봄의 제전을 하나로 엮은 자체 편곡. 경쾌한 선율 사이에 봄의 제전의 거친 리듬을 끼워 넣으며 신고전주의와 원시주의, 스트라빈스키의 상반된 두 시기를 한 곡 안에서 오갔다. 연주자들은 두 어법 사이를 어색함 없이 넘나들었고, 객석의 반응도 이날 가장 뜨거웠다. 본 프로그램에서 아꼈던 도발과 과감함이 여기서 제대로 나왔다.
발트앙상블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챔버 오케스트라라고 들었다. 이날의 무대는 그 목표가 빈말이 아님을 보여줬다. 10년간 쌓아온 실력과 호흡, 레퍼토리를 고르는 안목, 그리고 앙코르에서 내비친 자기만의 색깔까지. 작곡가에 대한 존중과 자기 목소리를 함께 갖춘, 잘 들은 연주회였다. 이 앙상블의 다음 10년을 기대하게 만드는 저녁이었다.
8월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서 열린 발트앙상블의 네오클래식 공연(사진=발트앙상블)
8월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서 열린 발트앙상블의 네오클래식 공연(사진=발트앙상블)
8월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서 열린 발트앙상블의 네오클래식 공연(사진=발트앙상블)
8월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서 열린 발트앙상블의 네오클래식 공연(사진=발트앙상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