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누가 국장에"…내부자 '꼼수' 못 막는 사전공시제도

경제

뉴스1,

2024년 12월 27일, 오전 06:00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증시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2024.12.2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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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 투자자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내부자 주식 거래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올해 부터 시행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도 이를 막지 못해 제도 보완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테마주'로 꼽히는 이스타코(015020)는 지난 23일 최대주주인 김승제 회장이 지난 20일 8만 주를 주당 1586원에 장내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총 1억 2688만 원 상당이다.

김 회장은 지난 9일과 10일에도 각각 10만 주(처분 단가 1691원), 7만 주(처분단가 2195원)를 장내매도했다. 3일간 김 회장이 처분한 총액은 4억 5963만 원에 달한다.

이스타코의 주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해제 직전인 3일엔 종가 기준 656원에 불과했다.

당초 김 회장은 사전공시제도에 따라 지난 4일 처분단가 656원에 100만 주를 시간외매매(블록딜)로 오는 2025년 1월 3일 처분하겠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지난 9일 '처분단가의 130% 초과 변동'을 사유로 이를 철회한 뒤, 장내매도를 통해 주당 2.5~3.3배에 달하는 차익을 실현했다.

계엄·탄핵 정국으로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받으며 급등한 이스타코의 주가는 김 회장이 장내매도 사실을 공시한 지난 11일부터 하락 전환했다.

김 회장은 지난 16일 추가로 처분단가 2230원에 블록딜로 100만 주를 처분하겠다고 공시했으나, 해당 공시 이후 주가가 재차 급락하자 이 역시 철회한 상태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정치 테마주뿐만이 아니다. 이달 들어 코스닥 시장에서는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것으로 의심되는 내부자 거래가 발생한 기업들이 여럿 발생하며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328130)은 임원들의 블록딜이 도마 위에 오르며 주가가 폭락했다.

루닛은 지난 18일 장 초반 △팽경현 상무이사(6만 4156주) △유동근 상무이사(6만 4156주) △박승균 상무이사(6만 4156주) △이정인 이사(6만 4156주)△박현성 상무이사(6만 4156주) △옥찬영 상무이사(9554주)가 이날 주당 7만 7934원에 보유주식 각 수량만큼 을 블록딜로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사전공시제도에 따르면 '거래금액 50억 원' 이상일 경우 한 달 전에 공시하도록 했지만 이들은 블록딜 사실을 거래 당일 사후 공시했다. 이는 팽 상무이사 등 임원 5명의 매도 금액이 처분단가 기준 49억 9993만 3704원으로 1주 차이로 공시의무 면제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임원 및 전직 임원인 주요주주(장민홍 공동 창업자)의 전체 매도 규모가 296억 원에 달하는 거액임에도, 현행 사전공시제도는 1인 기준이기 때문에 이들은 사전 공시를 피할 수 있었다.

이에 경영진의 도덕성이 논란이 되자 올해 2분기부터 루닛을 1326억 원 순매수하며 주가를 3만 원대에서 8만 원대까지 올린 기관 투자자부터 루닛에 등을 돌리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은 루닛 경영진의 '꼼수 매도'가 알려진 지난 18일부터 26일까지 6거래일 연속 루닛을 순매도하며 총 469억 원을 팔아치웠다.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같은 기간 23억 원 순매도하고 있다.

다른 바이오 기업인 이오플로우(294090) 역시 지난 4일 미국 인슐렛 사와의 펌프 특허 부품 도용 관련 분쟁에서 배심원 평결 패소 소식을 공시하는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내부자 매도로 구설수에 올랐다.

김재진 이오플로우 대표의 아내(김 안젤라 신)과 동생(안 재희 김)등 대표 일가와 전준성 총괄고문, 김창정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이오플로우 임원들은 패소 공시 당일 장내매도로 보유 중인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들의 매도사실 역시 공시는 뒤늦게 이뤄졌다. 특히 이오플로우의 내부자 일부는 오전 11시25분 패소 공시 이후 주가가 급락하기 직전 최고가(1만 80원)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높은 가격(안 재희 김 1만 100원·전준성 총괄고문 1만 원·김창정 COO 1만 117원)에 주식을 처분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투자자들의 공시 전 사전매매 의혹도 제기되며 금감원도 해당 사안을 들여다보는 상황이다.

여의도 증권가 2024.1.2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사전공시제도의 허점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현행 사전공시제도에서 루닛 같은 케이스는 이미 예견된 사례"라며 "당국이 쪼개기 매매를 방지한다고 거래수량, 거래 금액을 거래일 기준 6개월을 합산하기로 했지만, 1인 기준이라 내부자나 특수관계인이 합심해서 할 경우 충분히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액으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내부자 사전공시제도가 올해 7월 시행된지 겨우 6개월 만에 다양한 허점과 부작용이 관측되고 있다"며 "대주주나 경영진의 매매가 주가에 미치는 여파가 큰만큼,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위해라도 사전공시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Kri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