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불법파견 근로감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배송물량과 관련해 쿠팡의 '로켓배송' 등을 맡은 퀵플렉서 81.1%는 "배송물량을 자유롭게 정할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설문조사에는 퀵플렉서 1220명이 참여했다.
지난 14일 고용부는 '택배기사 과로사' 등 노동 이슈가 불거진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쿠팡CLS)에 대해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퀵플렉서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 파견 관계 역시 성립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법파견 논란 역시 일단락됐다.
고용부가 '쿠팡이 배송기사들에게 직접적인 업무지시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데에는 △퀵플렉서들이 화물차량을 소유하고 관리하며 차량유지비를 스스로 부담하는 점 △아르바이트 혹은 가족 등과 함께 배송이 가능한 점 △본인 재량으로 입차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배송을 완료하면 회사 복귀 등 없이 바로 업무가 종료되는 점 △고정된 기본급이 없으며 배송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 점 등을 근거로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실제 불법파견 근로감독 설문조사에서 '배송 종료 시 자유롭게 퇴근한다'라고 답한 퀵플렉서는 77.5%로 나타났다. 고용부는 이같은 결과와 '본인 재량으로 입차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53.6%)'는 응답 등을 토대로 파견관계가 미성립한다고 봤다.
고용부는 박 의원실의 관련 질의에도 "퀵플렉서 대면조사 시 대부분이 배송캠프 입차는 간선 차량 시간에 맞추지만, 개인의 사정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고, 배송을 완료하면 바로 퇴근한다고 답변했다"고 답했다.
노동계에서는 쿠팡의 불법 파견을 주장하며 쿠팡의 '클렌징 시스템'을 근거로 들어왔다. 이 시스템은 퀵플렉서가 배정된 물량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면 다음 배정 때 제한을 두는 방식이다. '배송 완료에 따른 퇴근'보다 '배송물량'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쿠팡과 퀵플렉서가 사실상 종속된 관계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불법파견 설문조사에서도 볼 수 있듯 배송 종료 시에는 자유롭게 퇴근이 가능하지만 할당되는 배송물량은 퀵플렉서가 정할 수는 없는 만큼, 고용부가 너무 단편적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고용부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기계적인 결론으로 책임을 방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택배노조도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는 고용부의 판단에 "배송기사가 입차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사례"라면서 "쿠팡은 '신선식품 배송을 오후 8시 전에 완료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배송 순서를 사실상 지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부의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해 5월 쿠팡 심야 로켓배송 업무를 하던 배송기사 정슬기 씨의 사망사고를 계기로 이뤄졌다. 당시 경기 남양주 대리점에서 주 6일 야간고정 근무하다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정 씨의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빠른 배송을 종용하는 담당자에게 "개처럼 뛰고 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박홍배 의원은 "쿠팡CLS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업무가 끝났음에도 퇴근할 자유조차 없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쿠팡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 끝까지 추궁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용부는 퀵플렉서 81.1%가 '배송물량을 자유롭게 정할 수 없다'고 답한 것과 관련해 "설문조사 결과 외 카카오톡 분석과 대면조사 결과를 모두 분석했을 때 물량이 많은 경우에는 배송과정에서 이를 줄이거나 조정하는 경우를 다수 확인했다"면서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근로감독 조사 결과 직접적인 업무 지시로 해석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고용부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배송 독려나 지원 요청 등이 일부 업무 지시 성격을 가질 수는 있지만, 화물 배송 준수 독려는 화물 운송 계약을 고지하는 것이라 근로자성 인정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참고해 퀵플렉서에 대한 근로자성을 판단했다"면서 "그날 고객의 주문 물량을 자기 구역에 배송하는 것이 원칙적인 위수탁 계약의 내용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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