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경산업 사옥 (사진=연합뉴스)
애경그룹의 이 같은 결정은 유동성 위기와 무관치 않다. 유통(AK플라자)·화학(애경케미칼)·항공(제주항공) 등 자회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그룹 재무구조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룹 지주회사 AK홀딩스의 총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4조원 수준으로 부채비율은 2020년 233.9%에서 지난해 328.7%로 급증했다. 애경산업의 상황도 좋지 않다. 지난해 애경산업의 매출은 전년대비 1.5% 증가한 6791억원을 거뒀지만 영업이익은 23.5% 급감한 474억원을 기록했다.
애경산업은 지난해 에이피알(278470)에 밀려 국내 화장품 ‘빅3’ 타이틀도 내줬다. 높은 중국 수출 의존도, 홈쇼핑·로드숍 중심의 유통 채널 한계, 중장년층 타깃의 브랜드 구성 등 복합적인 위기 요소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신흥 뷰티 브랜드의 등장으로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티르티르를 인수한 구다이글로벌, 지난해 2월 상장에 성공한 에이피알이 대표적이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기 전에 애경산업을 ‘제값’에 팔아 그룹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이번 매각 추진은 K뷰티 산업의 구조 재편을 상징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경산업은 애경그룹의 모태 사업이다. 산업의 중심축이 업력보다 빠른 기획력, 디지털 마케팅에 강한 트렌디한 뷰티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애경그룹은 1954년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를 모태로 성장했다. 생활용품 브랜드 ‘케라시스’ ‘2080’, 화장품 브랜드 ‘루나’ 등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후 디지털 D2C(소비자직접거래) 브랜드에 비해 감각과 민첩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애경산업은 중견 화장품 기업 중에서도 고유한 브랜드와 유통 경험을 갖춘 곳이지만, 시장의 디지털화와 소비자 세대 변화에 상대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측면이 크다”며 “이젠 브랜드력보다 기민한 운영과 소비자 소통 역량이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매각 추진은 국내 뷰티 업계에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누가 애경산업 인수에 나설지도 관심이다. 만약 국내 기업이 인수한다면 유통망 통합, 브랜드 확장에 따른 시너지가 기대된다. 다만 사모펀드·외국계 자본이 인수할 경우에는 수익성 중심의 구조조정이나 브랜드 해체 가능성도 우려된다. 특히 인지도 있는 브랜드가 재편 혹은 소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교수는 “사모펀드 등 인수 주체에 따라 그 영향은 천차만별일 것”이라며 “중국계 투자자가 인수할 경우 기술 유출은 물론 브랜드 정체성 훼손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애경그룹 측은 현재 애경산업 매각에 대해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애경산업 매각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며 “그룹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