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국에 26%의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산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예상보다 관세율이 높게 책정된 것은 물론 생산기지가 몰려 있는 중국과 베트남에 관세 폭탄이 떨어지면서 이중고를 겪게 됐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상호 관세가 미칠 파장을 점검하고 전략 수정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이웃 일본과 중국 등 국제 공조를 통해 협상력을 높여 대응해야 한다 제고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동남아 생산 제품에는 고율의 관세…멕시코 면세 유지는 '다행'
미국이 국가별로 차등을 둔 상호 관세 세율을 발표하자 가전업계는 셈법 복잡하다.
가전업계의 고심은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는 데 있다. 미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중국(34%, 기존 관세율 20% 합산 시 54%), 베트남(46%), 태국(37%), 인도(27%) 등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국가들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율이 책정됐다.
삼성전자(005930)는 베트남에 스마트폰 최대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성과 하이응우옌 공장에서 전 세계에 판매되는 스마트폰 물량의 50% 이상을 만든다. 미국향 스마트폰 물량 역시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066570)도 베트남 하이퐁 공장에서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나 애플을 고객사로 둔 디스플레이·카메라 모듈 기업을 비롯한 부품·소재 기업들도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백악관이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을 준수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계속 관세를 면제함에 따라 멕시코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은 기존 가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에서 TV를, 케레타로 공장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생산한다. LG전자는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오븐 등 가전), 라모스(전장) 등 세 곳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상호 관세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품목 관세 지정 가능성이 남아있는 데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및 과학법'(칩스법) 보조금 재협상을 공식화하면서 불확실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반도체가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할 수도 없고 품목 관세 가능성도 있으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3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전용부두에 수출용 차량들이 세워져 있다. 미국 정부가 2일(현지시간) 한국산 수입품에 25%의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는 3일 0시부터 부과할 계획이라고 재확인했다. 2025.4.3/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자동차 25% 품목 과세 발효 …美 수출액 9조원 감소 추정
반도체와 함께 대한민국 수출 품목 양대 산맥인 자동차는 이번 상호 관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미국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부과하기로 한 25% 관세가 정식 발효되면서 피해가 우려된다.
지난해 미국에서 역대 최대인 170만 대 이상을 판매한 현대차(005380)그룹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됐다. 지난해 미국 전체 판매량 가운데 57%인 101만5005대(현대차 63만7638대·기아 37만7367대)가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향했다. iM증권은 25% 관세 부과 시 현대차·기아의 부담은 현대차 5조 7000억 원, 기아 4조 원 등 1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생산기지 역할을 하면서 미국 시장에 자동차를 공급했던 한국GM은 가격 경쟁력 상실로 존립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내몰렸다.
철강 대미 수출액 4800억 원 감소 전망…소재 산업도 '긴장'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효성(004800)과 HS효성그룹은 소재 사업 특성상 미국에 직접 수출하는 물량이 많지 않지만 동남아에 공장을 두고 있는 고객사의 납품가격 인하 요구가 두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미국 수출 부진에 따른 주문량 축소는 결국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상호 관세라는 핵폭탄은 피했지만 25%의 품목 관세가 부과된 철강업계는 수출액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IBK 기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철강 관세 25% 부과로 대미 수출액은 11.4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기준 대미 철강 수출액(약 29억 달러)을 고려하면 감소액은 약 3억 3000만 달러(약 4835억 원)다.
경제계 "한미 정부 간 조율 기대"…전문가 "'협상력' 높여라"
경제계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 간 후속 협상에서 긴밀한 소통과 정책 조율로 상호 관세 회피를 기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상호 관세 시행 과정에서 그간 한국과 미국이 쌓아온 신뢰 기반을 바탕으로 양국 정부 간 긴밀한 소통과 정책 조율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정부 간 협상에서 산업계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 상호 관세로 인한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일단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국가별·업종별 협상 결과에 따라 관세나 인센티브를 새롭게 조정하겠다는 상호 관세에 담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일 협력 또는 한중일 3국 공조로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위원은 "(상호관세율) 25%는 다소 높게 책정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는 협상의 시작점일 뿐 종착점은 아니기에 감정적으로 성급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상호관세 발표는 시작에 불과하다. 국제통상 질서가 새롭게 변하는 대전환의 서막"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역시 "최악은 피한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미국과의 협상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기보다 일본·중국 등 처지가 비슷한 국가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해 대응하는 것이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국가 연대를 통해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관 합동 대책 회의'에서 "정부는 통상교섭본부장의 방미(方美)를 포함해 각급에서 긴밀한 대미 협의를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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