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7개 계단 오르기도…74세 최고령도 뛴 ‘극한 레이스’[르포]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06일, 오후 07:06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6일 오전 6시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일대. 수영복 차림의 참가자 수백 명이 잔디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여름의 푹푹 찌는 날씨 속에서 수면을 응시한 참가자들의 표정엔 긴장과 기대가 엇갈려 맺혔다. 한 시간 뒤 레이스가 시작한 순간, 웃음기 섞인 표정은 이내 사라지고 눈빛은 날카로워진다. 도심 한복판 물살을 가르며 2025 롯데 아쿠아슬론이 막을 올렸다.

2025 롯데 아쿠아슬론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수영 레이스를 마치고 석촌호수 밖으로 나오고 있다. 수영 총 거리는 1.5km다. (사진=한전진 기자)
◇도심 한복판서 물살 가르고, 123층까지 뛴다

롯데 아쿠아슬론은 석촌호수에서 1.5㎞ 야외 수영을 마친 뒤, 인근 롯데월드타워 1층부터 123층 전망대까지 2917개의 계단을 오르는 복합 스포츠 경기다. 도심에서 열리는 국내 유일 ‘야외 수영과 초고층 계단 레이스’로, 2022년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롯데물산과 롯데그룹사가 주최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825명이 참가했다.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참가자들이 몰려 ‘전 세대 레이스’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열기를 더했다.

워밍업을 마친 참가자들은 수모 색상에 따라 조별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검정, 빨강, 파랑 등으로 나뉜 수모는 대한철인3종협회 기록 기준에 따른 실력 구분용으로 출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수면 위엔 진입 방향을 안내하는 주황색 튜브 라인이 뻗었고, 10m 간격마다 안전보트가 배치돼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발목에 부착된 센서는 출발 매트를 밟는 순간 작동해 개인 기록을 자동으로 측정했다.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열린 ‘2025 롯데 아쿠아슬론’에서 한 참가자가 1.5㎞ 수영 구간을 마친 뒤 계단 구간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총 825명이 참가했다. (사진=한전진 기자)
출발 약 30분 뒤, 검정 수모의 선두 그룹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참가자들은 젖은 몸을 이끈 채 곧장 계단 구간으로 향했다. 수모를 벗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일부는 이미 전속력으로 빌딩 입구를 통과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상체를 숙이고 빠른 속도로 오르는 동작은 거칠고 치열했다. 도시 한복판, 초고층 빌딩 내부에서 펼쳐지는 이색 철인 레이스의 불꽃이 튀기는 순간이었다.

◇74세도 뛰었다…세대 불문 ‘완주 본능’ 폭발

종합 1위는 천안시청 소속 장현일(22·남) 씨가 차지했다. 수영과 계단 코스를 합쳐 44분 25초 만에 완주했다. 장씨는 “123층까지 오르며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정상에 도착하니 뿌듯함과 감회가 동시에 밀려왔다”고 했다. 이어 “수영은 수온이 적당해 컨디션이 좋았고, 계단은 걷지 않고 계속 오르다 보니 어느새 120층까지 올라와 있었다”며 “완주 자체가 큰 성취로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여성부 1위는 청주에서 올라온 이지현(42·여) 씨였다. 그는 “물이 맑아 앞선 선수가 보일 정도였고, 수온도 적당해 컨디션이 좋았다”며 “계단은 초반 20층이 가장 힘들었지만 이후 두 계단씩 오르며 페이스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작년에 참가하지 못한 게 아쉬워 접수 시작과 동시에 신청했다”는 그는 초등 4학년과 2학년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수영과 계단을 합쳐 53분 18초 만에 완주했다.

참가자들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내부 계단을 오르며 123층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총 2917개의 계단을 오르는 수직 마라톤 코스를 포함한다. (사진=롯데물산)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123층에서 열린 ‘2025 롯데 아쿠아슬론’ 결승 지점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 장현일 씨(왼쪽)가 맹호승 대한철인3종협회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특히 이번 대회에선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 중장년 참가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전체 825명 중 50대 이상은 225명으로, 약 30%를 차지했다. 최고령 참가자 박종섭(74·남) 씨는 완주 직후 “녹내장 치료로 7개월을 쉬었지만, 작년엔 800명 중 147등을 했다”며 “올해도 200등 안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10층까지는 정말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100층부터 다시 힘이 났다”며 완주 소감을 전했다.

여성 최고령자인 이소정(66·여) 씨는 올해로 세 번째 아쿠아슬론에 참가했다. 그는 “작년보다 계단 기록이 4분 줄었다. 걷지 않고 끝까지 뛰었고, 물도 맑아 수영도 수월한 편이었다”고 했다. 이어 “한 번도 쉬지 않고 끝까지 올랐다. 작년엔 중간에 걷기도 했지만 올해는 뛰었다”고 덧붙였다. 평소 수영, 자전거, 등산을 병행하고 있다. 가족은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매년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6일 ‘2025 롯데 아쿠아슬론’에 참가한 박종섭 씨(74)가 완주 메달을 들어 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씨는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로 완주에 성공했다. (사진=한전진 기자)
◇“물맛이 다르다”…석촌호수, ESG의 얼굴 되다

참가자들이 공통으로 언급한 건 ‘호수의 물맛’이었다. 석촌호수는 도심 속 인공호수지만, 최근 5년간 송파구청과 롯데물산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일환으로 수질 개선 작업을 진행해왔다. 게 껍데기에서 추출한 친환경 응집제를 활용해 부유물과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광촉매 기술로 미세 입자를 분해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지난해 환경부 수질 환경 기준 대부분 항목에서 1등급 판정을 받았다.

아쿠아슬론은 이런 석촌호수 수질 개선 성과를 시민에게 알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물이 예상보다 맑아 놀랐다”, “도심 한복판 호수에서 수영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고 입을 모았다. “얼굴을 담갔을 때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수영 종목 특성상 물 상태에 민감한 참가자일수록 석촌호수의 수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게 롯데물산의 설명이다.

롯데물산은 아쿠아슬론을 석촌호수와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한 국내 대표 도심형 스포츠 행사로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장재훈 롯데물산 대표는 “아쿠아슬론은 1년에 하루만 수영이 허용되는 석촌호수와 국내 최고층 빌딩을 함께 활용하는 유일한 대회”라며 “도심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례적인 스포츠 플랫폼으로, 참가자들이 직접 123층을 오르며 그 의미를 체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6일 ‘2025 롯데 아쿠아슬론’이 열린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한 참가자가 1.5㎞ 수영 구간을 위해 물속으로 힘차게 입수하고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