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계급사회' 2017년 데자뷔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06일, 오후 07:11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대출 규제는 맛보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취임 3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대책이 주머니 속에 많이 있다”는 말과 닮았다. 그 뒤 집값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6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 바라본 강남의 모습.(사진= 방인권 기자)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차이가 있다면 6.27 초강력 대출 규제에서 보듯이 누구도 예상치 못할 만큼 센 카드를 들이민다는 것이다. 문 정부가 스무 번 넘게 계속해서 총을 쏘아댔다면 이 정부는 바주카포를 한 방에 쏘는 방식이다.

그러나 두 정부 모두 부동산 정책 접근법은 같다. 이들이 들고 나온 카드들은 묘하게 ‘계급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문 정부 때는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벼락거지’란 용어로 갈라놨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보통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을 때 ‘주택 매수’를 고려해왔기 때문에 결혼 시기에 따라 ‘벼락거지’ 여부가 결정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를 톡톡히 경험한 세대들은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집 매수’에 뛰어들었다. 2~3년간 서울의 핵심지, 경기 일부만 오르다보니 ‘서울’, ‘아파트’ 선호현상도 강해졌다. 서울 노원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성남시 분당구로 출퇴근 하면서 서울 용산구에 자취방을 얻은 자신의 딸 얘기를 꺼냈다. 그녀의 사유는 ‘그래도 서울에 주소지가 있어야 한다’였다.

두 정부 모두 부동산 투기를 억제해야 한다는 정책 의도는 똑같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미래가 부동산 정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며 “투기적 자금이 부동산보다 금융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주주 권리를 강화한 상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부동산에서 자금이 주식으로 옮겨가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모든 정책이 의도대로만 된다면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6.27대책 이후 떠오르는 단어는 또 다시 ‘계급사회’다. 준상급지, 상급지로 이동하고 싶어하는데 이 고리가 현금부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끊겼다. 왜 사람들은 수 십 억원의 빚을 내서라도 상급지로 가려고 할까. 지난 달 30일,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집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후배 기자의 질문에 “계급사회에서 상류사회로 오는 계급비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구 자산의 75%가 부동산인 나라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가 부의 기준점이 돼 버린 게 현실이다. 기꺼이 계급비를 내겠다는 사람들에게 수요를 억제해서 집값을 누르는 게 가능할까. 계급화를 약화시키는 가장 큰 원칙은 ‘희소성을 깨는 것’이다.

이 정부 출범 20여일 만에 나온 6.27규제가 주는 메시지는 ‘코끼리 생각하지 말라’(Don’t think of an elephant)는 것과 같다. 미국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이미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말했듯이 부동산 말고 ‘주식’이라는 데 초강력 대출 규제로 부동산이 갈라놓은 계급사회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떠오르게 된다. 2017년 데자뷔는 대통령 발언이 비슷하기 때문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