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부터 전 세계 국가에 상호관세율을 적은 '관세 서한'을 보내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먹구름이 어느 때보다 짙어졌다. 대다수 주요 기업이 가뜩이나 부진한 2분기 성적표를 받을 전망인 가운데, 이른바 '트럼프 청구서'까지 날아들게 생긴 셈이다.
상호관세 유예 시한(8일)이 임박하자, 정부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통상·안보 수장을 미국에 급파해 '막판 협상전'에 나섰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시간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탓에 재계 불안감은 절정에 치닫는 분위기다.
상호관세 발효 임박하자…韓 통상·안보 수장, 급거 미국행
7일 재계에 따르면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전날(6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위 실장은 8일까지 사흘간 워싱턴 D.C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 통상, 안보, 정상회담 등 양국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예 만료를 앞둔 상호관세에 관한 협의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위 실장에 앞서 정부는 5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급파해 협상을 진행했다. 여 본부장은 현지에서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약식 인터뷰에서 "상호 관세의 유예 연장과 한미 간 큰 틀의 무역 합의 조기 타결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실리 외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안보·통상 수장이 잇달아 미국을 찾은 이유는 당장 이틀 뒤 유예가 끝나는 '상호관세'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미국 뉴저지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 "몇몇 서한에 서명했고 7일 발송될 것"이라며 "금액도 다르고 관세도 다르며 아마 12통 정도(12개국)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57개국에 10%의 기본관세와 최대 50%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중 상호관세는 이달 8일까지 90일간 유예(중국 제외)했는데, 현재까지 무역 협상을 타결한 나라는 영국과 베트남뿐이다. 중국은 지난 5월 미국과 양국 간 관세율을 115%씩 9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했으나 최종 협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위성락 실장은 미국 측 인사들과 관세 등 현안 관련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2025.7.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실적 부진에 관세까지 덮치면 최악"…최악의 한파 오나
상호관세는 8월 1일부터 일괄 부과된다.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미 상반기부터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발 공급 과잉, 관세 부담 여파 등으로 실적이 하락세를 걷고 있다. 여기에 상호관세까지 직접 영향을 미치면 3분기부터 '퍼펙트 스톰'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 잠정실적을 발표하는 LG전자의 2분기 실적 컨센서스(전망치)는 매출 21조 4973억 원, 영업이익 8563억 원으로 집계됐다. 8일 잠정 실적을 발표하는 삼성전자의 2분기 컨센서스는 매출 76조 5535억 원, 영업이익 6조 4444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3.4% 늘겠으나 영업이익은 38.3% 급감할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진'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미국 관세 부담에 따른 선제적 업황 둔화와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 원·달러 약세라는 공통 분모가 양사를 관통한다. 특히 지난달부터 냉장고, 세탁기 등에 최대 50% 철강 파생 관세가 붙은 점도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더 관건은 3분기다. 8월부터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북미향(向) 제품들이 수출 경로에 따라 국가별 상호관세가 얹어진다. 이에 앞서 스마트폰은 이달부터 최소 25%의 품목 관세가 붙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상호관세율이 46%에서 20%로 낮춰졌지만, 상대적으로 한숨을 돌린 것이지 (관세가 없는) 현재보다는 20%의 부담이 커진 것"이라며 "실적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미 4월부터 품목 관세가 적용된 자동차 업계는 이듬달인 5월부터 실적이 급전직하한 상황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621억8000만달러로, 전년 동기(약 645억 달러) 대비 약 23억달러(3.7%) 감소했다. 대미 수출 양대 품목인 자동차(-16.8%)와 일반기계(-16.9%)는 평균치보다 감소 폭이 5배가량 높아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미 행정부와 로비를 벌이고 있지만 상호관세는 정상회담을 통한 타결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한미 정상회담이 상호관세 협상 시한(8일) 후에 이뤄지더라도 본격 관세가 부과되는 8월 1일 전에 타결이 이뤄진다면 상호관세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