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상호관세 시한폭탄…기업들 美 투자압박 커질듯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08일, 오후 04:09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한미 통상 협상 시한이 오는 8월 1일로 사실상 유예된 가운데 기업들의 미국 투자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에 따른 기업 실적에 타격이 현실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기업들은 관세를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하며 대응책을 타진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 “미국 내 투자 압박 거세질 것”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최우선 표적’으로 삼고 오는 8월 1일부터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무역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서한을 발송한 사실을 최우선으로 공개했다.

다음 달 1일로 사실상 상호관세 협상이 유예된 상황에서 기업들에 가해지는 미국 투자 압박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제조시설을 늘리라는 요구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은 미국 투자 압박이 커질 것”이라며 “예를 들어 삼성전자(005930)가 미국 테일러 공장에서 몇 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최첨단 공정을 둘지도 압박이 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에 최첨단 반도체 공정 시설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2공장, 3공장을 건설 중이다. 지난 4월 착공에 들어간 3공장에서는 2나노 공정인 최첨단 공정을 적용할 예정이다.

마이크론과 TSMC 등 반도체 기업들이 줄줄이 미국 내 투자를 약속했다.TSMC는 향후 4년 간 미국에 최소 1000억달러, 마이크론은 기존보다 3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트럼프발 관세 압박에 따른 실적 타격은 줄줄이 현실화하고 있다. 전날 LG전자(066570)는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 2016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6000억원대를 잠정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라 가전제품을 생산에 미국으로 수출하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가전제품에 사용된 철강·알루미늄 부품의 원산지를 따져 관세를 매기는 파생관세도 영향을 받았다. LG전자 관계자는 “2분기 들어 본격화한 미국 통상정책 변화가 관세 비용 부담과 시장 내 경쟁 심화로 이어지는 등 비우호적인 경영 환경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 하반기 관세 여파 현실화

하반기부터는 관세 부과의 여파가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상호관세가 어느 수준에서 결정될 지 알 수 없고, 반도체의 경우에는 품목 관세까지 남았다는 점에서 기업의 불확실한 상황은 이어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에 따른 시나리오별 가능성을 놓고 여러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으나 뚜렷한 돌파구는 없는 상황”이라며 “관세 협상에 따른 불확실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경영 판단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가속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아니더라도 다른 저전력 D램이나 범용 D램 등에 관세를 매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메리카 우선주의’에 따라 미국 내에 생산 시설과 제조 공장을 지어야 혜택과 보조금을 주겠다는 기조는 변함이 없어서다.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에도 그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OBBBA 법안에는 2026년까지 미국 내 신규 공장을 착공하는 반도체 기업에 대해 35% 투자세액공제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공제율이 25%에서 10%포인트를 올렸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AI 패권경쟁 차원에서 미국이 HBM 등에 직접적으로 관세를 부과하진 않을 것으로, 메인 압박카드는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엔비디아 공급망에서도 마이크론이 ‘제2의 HBM’으로 불리는 소캠(SOCAMM)의 우선 공급자가 되는 등 큰 흐름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지원은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OBBBA 법안에서 미국 내 기업 연구개발(R&D) 비용 즉시 공제 조항도 영구화하기로 함에 따라 인텔, 마이크론이 큰 수혜를 입게 된다. 미국 종합반도체기업(IDM)과 팹리스의 강한 연동은 국내 기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미 수출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25%의 상호 관세 부과가 실제로 적용된다면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모두 가격 인상으로 전가할 순 없어서다. 기업들이 관세를 떠안거나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개별 기업들이 관세를 대응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규복 석좌연구위원은 “해결 방법은 결국 정부 협상이 될 것”이라며 “삼성, LG전자 등 개별 기업이 관세에 대응하긴 어렵다. 정부가 묶어 관세 대응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품목관세도 남아 있어 미국 시장의 수요가 많은 제품을 어필하면서 조선업 등에서도 한국이 협조할 부분이 있음을 강조하는 식의 협상이 이뤄져야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