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25%·철강 50%' 관세 굳어지나…美 투자압박까지 '산 넘어 산'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08일, 오후 07:01

[이데일리 정병묵 김소연 김은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차 25%, 철강 50% 등 품목 관세 부과를 고집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관세 악재’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율 관세에 따른 실적 타격이 현실화하면서 기업들은 다양한 대응책을 고민 중이다. 미국의 우리 기업에 대한 투자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며 ‘최악의 위기’가 임박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에 보낸 서한에서 오는 9일부터 부과될 예정이었던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8월 1일로 연기하고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율을 조정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상호관세는 품목별 관세와 별도”라고 강조했다. 한·미 통상 전반에서 협상 시간을 벌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25%), 철강(50%)에 부과된 관세는 ‘별도’라고 못 박으면서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가 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자동차·철강 업계 고율 관세 고착화 우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에서 대미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부품·철강 등에 부과된 관세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워낙 완강한 입장이기 때문에 관세를 낮추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3주간 양국 협상에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를 고집해왔고 이후 실제 부과까지 한 번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현대차(005380)그룹이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에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 초대형 투자를 결정하자 “현대는 위대한 기업”이라고 치하했지만 4월부터 예정대로 한국산 차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우리나라 대미 자동차 수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실적도 3분기부터 본격 관세 영향권에 들어갈 전망이다. 2분기까지는 ‘비관세 재고’로 버티며 판매 호조를 이어갔지만 이마저도 바닥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3분기부터 현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며, 이어 미국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게 되는 수순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기아뿐만 아니라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관세 본격 영향으로 3분기 실적부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미국이 25% 관세 유지 시 이를 만회해 5% 이상 가격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업계는 품목관세 50%에 상호관세는 중첩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평가지만 고율 관세가 고착화할까 우려하고 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실장은 “미국이 우리나라 철강에 보편관세와 상호관세를 모두 부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수출이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관세가 높아질수록 수출 제한 효과는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협상 3주간 유예…미국 ‘투자 압박’ 거세질듯

더 큰 문제는 상호관세 협상이 유예된 다음달 1일까지 우리 기업들에 가해지는 미국의 투자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제조시설을 늘리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에 대한 미국 투자 압박이 커질 것”이라며 “예를 들어 삼성전자(005930)가 미국 테일러 공장에서 몇 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최첨단 공정을 둘지도 압박이 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에 최첨단 반도체 공정 시설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이크론과 TSMC 등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줄줄이 미국 내 투자를 약속했다. TSMC는 향후 4년 간 미국에 최소 1000억달러, 마이크론은 기존보다 3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트럼프발 관세 압박에 따른 실적 타격은 줄줄이 현실화하고 있다. 전날 LG전자(066570)는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 2016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6000억원대를 잠정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라 가전제품을 생산에 미국으로 수출하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가전제품에 사용된 철강·알루미늄 부품의 원산지를 따져 관세를 매기는 파생관세도 영향을 받았다.

하반기부터는 관세 부과의 여파가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상호관세가 어느 수준에서 결정될지 알 수 없고, 반도체의 경우에는 품목 관세까지 남았다는 점에서 기업의 불확실한 상황은 이어지는 셈이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관세에 따른 시나리오별 가능성을 놓고 여러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으나 뚜렷한 돌파구는 없는 상황”이라며 “관세 협상에 따른 불확실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경영 판단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부담”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