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의 협상시간…美 달랠 농축산·디지털 비관세장벽 해소 카드 ‘고심’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08일, 오후 05:26

[이데일리 김형욱 김은비 정두리 기자] ‘눈앞의 25% 관세 부과는 3주 늦췄지만, 여전히 상황은 어렵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8월1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부과 예고 서한을 받아든 통상 당국의 분위기다. 9일로 예고됐던 시행 시점이 늦춰지며 협상 시간을 벌었지만,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이나 디지털 부문 규제 완화 등 미국 측 비관세장벽 해소 요구에 대응하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현재 미국에 있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한 통상당국이 곧 대미 협상에 나섰지만 미국에 내밀 비관세장벽 관련 카드를 시간 내 구체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양국 모두 이익 되는 랜딩 존 찾아야 할 때”

8일 산업부에 따르면 여 본부장은 미국 정부가 한국에 상호관세 부과예고 서한을 보낸 직후인 7일 저녁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나 고위급 논의를 시작했다. 한·미 제조업 협력을 중심으로 한 기존 제안과 함께 비관세장벽 문제 해소를 위한 조율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 본부장은 오는 9일에도 러트닉 장관을 다시 만나 추가 협의를 이어간다.

여 본부장은 “3주도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니다”며 “협상을 가속해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랜딩 존(착지점)’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율 조정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마음에 드는 제안’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하느냐다. 미국 측은 올 4월 한·미 통상협의 개시 이후 농축산물 시장접근과 디지털 관련 규제 등 한국의 비관세 무역장벽 해소를 요구해 왔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대표적인 요구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과 쌀 시장 개방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소고기 수입을 허용하되 광우병 등 우려로 30개월령 이상 수입은 제한했다. 또 쌀도 식량 안보 차원에서 국가별로 할당된 일부 수입물량을 빼면 513%의 관세를 부과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쌀 수입제한에 대해선 “최악의 무역장벽”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디지털 규제 완화도 미국의 주요한 요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재명 정부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대형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고자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 중인데, 미국은 구글, 아마존 같은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또 군사·안보상 이유로 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제한한 것도 ‘구글 맵’에 대한 규제로 간주하고 있다.

통상 당국은 이 같은 요구에 대한 우리의 상황을 미국 측에 전달하는 동시에 미국 측에 제시할 패키지 딜을 만들기 위한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당국 관계자는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국내 제도 개선과 규제 합리화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원유·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와 방위비 분담금 확대, 미국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사업 참여 등도 검토 중이다. 이들 이슈는 한·미 통상협상의 직접적인 안건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주된 관심사항인 만큼 협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모두 정치적 민감 이슈…협상카드 마련에 진통

다만, 이 같은 미국 측 비관세 장벽 해소 요구는 대부분 정치적 민감 이슈여서 남은 3주간 논의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농축산업계는 벌써 한·미 통상협상이 추가적인 시장 개방으로 이어지리란 우려 속 강경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의 통상조약법 절차 추진 계획 등을 논의하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출범이 아직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들 민감 사안을 논의하려면 농림축산식품부(농축산물 시장 개방), 공정거래위원회(플랫폼법), 국토교통부(지도 데이터 국외반출), 국방부(방위비 분담금) 등 거의 모든 부처와의 조율이 필요한데 이들 부처 장관 인선이 이뤄지려면 아무리 빨라도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가 끝나는 이달 중순 이후다. 대미 협상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산업부와 외교부 장관 인선도 아직이다.

통상 당국은 이 같은 어려움을 고려해 조선산업 등 한·미 제조업 협력을 통한 무역 불균형 해소와 미국 제조업 재건을 우선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 관세조치에 따른 우리 경제 충격을 고려하면 양보할 건 양보해야 한다는 게 통상 전문가의 판단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쌀 시장은 예외로 하더라도 소고기 시장의 수입 제한은 일부 푸는 식으로 내줄 건 내줘야 우리 경제 전체의 타격을 줄일 것”이라며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제한 역시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만큼 변화를 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벌써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25%의 상호관세가 3주 유예됐다고는 하지만 철강, 자동차 등에 대한 25% 품목관세와 10%의 기본 상호관세는 이미 부과 중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호황 속 상반기 수출은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지만, 관세 부담을 떠안고 있는 기업의 실적은 크게 악화한 상황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기업들이 내수 부진을 만회하고자 수출을 늘리고 있는데 관세 부담 때문에 기업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미국 고관세 정책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대미 통상협상과 함께 산업별 경쟁력 강화 방안도 추진한다. 문신학 산업부 제1차관은 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민관 합동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과의 집중 협상을 통해 상호호혜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피해업종 지원과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수출 다변화 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