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장기화되면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유관기관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이어 금감원까지 조직개편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기관 간 '밥그릇 싸움'이 본격화된 양상이다.
정부의 조직개편 논의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다 보니 기관들이 입장을 개진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편, 공무원 조직인 금융위원회는 직원들에게 조직개편 관련 '발언 자제령'을 내린 상태다.
'조직개편' 속앓이에 국회 찾은 금감원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고위 간부들은 최근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방문해 '금융감독 기능·권한의 재배치 방안'을 제시했다. 조직개편 대상인 금감원이 직접 국회에 입장을 전달한 셈이다.
현재 금융당국 조직개편 논의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방안, 둘째는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격상하는 방안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이 분리될 경우 금융감독 기능은 금감원 중심으로 일원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금소처의 경우 별도 기관으로 분리·격상하기보다는 금감원 내에서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입장 전달은 금감원이 직접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실을 접촉해 이뤄졌다. 다만 접촉 대상은 여당 일부 의원실에 한정됐으며, 일정 조율이 되지 않아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위원회 깃발 (금융위원회 제공) 2021.4.14/뉴스1
금감원이 왜? 월권 논란…"오죽했으면" 반론도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일각에선 유관기관들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 10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가계부채 등 거시건전성 정책에서 한국은행의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고 공개 발언하는 등, 각 기관이 일제히 '권한 확대'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감원을 향해선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산하의 준정부기관이다. 금융위가 아직 조직개편과 관련한 입장을 내지 않은 상황에서, 산하 민간 기구에 불과한 금감원이 선제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실제 한 정무위 관계자는 "조직개편은 금융위가 담당해야 할 사안이고, 국회에서도 금융위 소관으로 보고 있다"며 "금융위 입장도 듣지 못한 상황에서 금감원 얘기부터 듣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금감원이 이처럼 '독자 행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을 봐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조직개편은 금융소비자와도 직결된 사안인데, 국정기획위가 초안을 만들어 대통령실에 올리면 국회에서 곧바로 처리된다"며 "정작 개편 당사자들도 내용을 전혀 모르고, 공론화 과정도 없이 조직 구조가 바뀌는 게 과연 맞느냐"고 지적했다.
금융위 사무처장, 조직개편 혼란에 "직원들에 일만 해라"
국정기획위원회는 이달 3일 이재명 대통령에 초안을 보고한 뒤 2주째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한주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기본 방향은 대통령의 후보 시절 연설이나 발표, 공약집에 담긴 내용"이라며 "이를 반영한 실무안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개편 대상인 금융위원회는 내부 직원들에게 조직개편 관련 '발언 자제령'을 내린 상태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 15일 '금융권 무더위 쉼터' 현장 점검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금융위 직원들은 조직개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말고, 주어진 일만 하라"며 "공무원은 일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한마디 이외에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위는 정부 조직인 만큼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기 어려운 입장이다"며 "금감원이나 한국은행은 민간 조직이라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ukge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