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등급 스플릿은 신용평가사가 동일한 기업에 대해 서로 다른 신용등급이나 등급 전망을 부여하는 현상을 말한다. 각 신평사는 자체적인 평가 모델과 지표를 사용하기 때문에 동일 기업에 대한 평가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신용등급 스플릿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신용 리스크를 평가할 때 더 신중해지게 된다. 이는 금리 상승, 즉 자금 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상반기 신용등급 스플릿은 주로 업황 둔화와 투자 부담이 중첩된 석유화학, 이차전지, 유통, 건설 등의 업종에 집중됐다. 이들 업종은 수익성 저하와 차입금 증가 등 주요 신용지표에서 평가사 간 관점 차이가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상반기 정평에서는 △SKC(A+/A) △동화기업(BBB+/A-) △풀무원식품(BBB+/A-)의 신용등급 스플릿이 발생했다. 이외에도 △SK쉴더스(A/A-) △고려아연(AA+/AA) △롯데물산(A+/AA-) △에쓰오일(AA+/AA) △에코프로(BBB+/A) △에코프로비엠(A-/A) △현대글로비스(AA/AA+) △현대엘리베이터(A+/A) 등도 스플릿 상태다.
한신평은 SK그룹 석유화학 지주사인 SKC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으로, 한기평과 NICE신평은 ‘A+(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신평은 SKC의 유동성 대응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고, 한기평과 NICE신평은 충분한 유동성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고 봤다.
한신평은 동화기업의 신용등급도 ‘A-(부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하향했다. 한신평은 “약화한 영업현금창출력 대비 투자 및 계열사 자금지원으로 누적된 차입금이 과중해 단기간 내 유의미한 수준의 재무부담 완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NICE신평은 ‘A-(부정적)’을 유지했다.
풀무원식품도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면서 스플릿이 발생했다. 한기평은 풀무원식품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NICE신평은 풀무원식품의 신용등급을 ‘A-(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기평은 풀무원식품의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국내 및 해외사업의 동반 부진으로 영업수익성 개선이 미진했단 이유에서 등급을 하향했다고 밝혔다.
신용등급 전망 스플릿은 총 13곳으로 집계됐다. △SK어드밴스드(BBB+) △SK지오센트릭(AA-) △동아에스티(A+) △키움에프앤아이(A-) △한국항공우주(AA-) △한진(BBB+) △현대로템(A+) △호텔신라(AA-) △효성화학(BBB) 등에서 등급 전망이 불일치한 상태다. 신용등급 전망 차이가 나면 향후 등급 자체의 스플릿 구조가 발생할 수 있다.
신용등급 스플릿이 발생한 기업의 경우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 시 수요예측 과정에서 투자자 신뢰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나 금리 프리미엄 요구 등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할 수 있어서다. 스플릿이 지속되면 동일 등급 내에서도 신뢰도 격차에 따른 시장 내 차별화가 심화할 수 있단 분석이다.
이승재 iM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정기평정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신용등급과 수익률 간 괴리도는 시간이 갈수록 해소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며 “다만 하위등급 및 비우호적 업황에 직면해 있는 경우 수급상 열위로 인해 충격이 크게 작용해 등급 대비 오버 경향이 강해질 수 있음은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