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 위원장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금융의 과감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며 ‘금융 대전환’을 선언했다. 그는 금융의 3대 방향으로 생산적 금융, 소비자 중심 금융, 신뢰 금융을 제시했다. 그는 “담보대출 위주의 손쉬운 방식에서 벗어나 첨단산업·벤처·혁신기업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금 흐름을 바꾸겠다”며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첨단전략산업과 생태계에 전례 없는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서민·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서민금융안정기금 설치와 채무조정을 강화하겠다”며 “금융상품 판매 전 과정과 내부통제를 꼼꼼히 점검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겟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가계부채, 부동산 PF, 취약 산업 구조조정 등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 금융시장의 안정을 지키겠다”며 “불법·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 위원장의 취임은 정부의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공식화된 직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와 여당은 금융위의 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넘기고 금융감독 기능은 금감원과 합쳐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금융 담당 조직은 ‘재경부-금감위-금감원-금융소비자보호원’ 등 4개로 확대한다. 사실상 금융위 해체를 전제로 한 개편안이다.
이에 야당은 이 위원장의 인사청문회 당시 “철거반장으로 온 것 아니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당정은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하지만 후속 입법과 야당 반발로 내년 4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조직법은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언급했지만 최장 330일의 법안 심사 기간이 필요한 만큼 조직개편 불확실성은 장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위 내부의 동요도 감지된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지난 12일 전 직원 간담회를 열어 재경부와 금감위로 이동하는 인력 규모를 설명했다. 조직의 절반 이상이 재경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 속에서 직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 위원장은 공식 취임사 직후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조직개편에 따른 불안을 달래려 했다. 그는 “기관장 지명을 받았을 때 설렘이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조직개편 소식에 직원들이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을 충분히 공감한다”며 “조직의 모양이 달라져도 금융안정과 국민경제 기여라는 사명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그러면서 “국민이라는 고객을 안전하게 모셔야 하는 동시에 함께하는 동료도 끝까지 보살펴야 한다”며 “여러분 목소리를 먼저 듣고 제가 먼저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여러분이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 걱정하는 마음과 그 무게에 충분히 공감한다”며 “그렇지만 공직자로서 국가적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그 정해진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도 우리의 책무이자 의무인 것도 엄중한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8대 금융지주회장 만나 ‘원팀’ 당부
혼돈 속 금융위가 추진해야 할 현안도 쌓여 있다. 113만명 채무자 구제를 목표로 한 배드뱅크 설립은 다음달 초 출범을 목표로 준비가 진행 중이지만, 업권 분담금과 채권 매입가율 협의가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어 서민금융안정기금 설치는 대통령 공약이자 금융당국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사람 대출 이자가 더 비싸다. 너무 잔인하다”며 제도 개선을 직접 지시했다.
제4 인터넷전문은행 출범도 지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3월 예비인가 신청을 받았지만 발표조차 못 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도 계속된 부담이다. 금융위는 6·27 대책을 통해 총량 관리에 나섰지만 부동산 시장 불안이 이어지면 추가 대책이 불가피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역시 발행 주체, 인가 요건, 준비자산 규제 등 세부 쟁점이 산적해 있다.
이 위원장은 취임 직후 첫 공식 일정으로 KB·신한·하나·우리·농협·iM·BNK·JB 등 8대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연합회장을 만나 금융 대전환의 세부 과제를 논의했다. 그는 “생산적 금융 확대와 소비자 중심 금융, 신뢰 금융을 위해 업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며 “정부와 업계, 유관기관이 원팀이 돼 함께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금융지주회장들은 국민성장펀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첨단산업과 관련 생태계를 지원하고 ESG 금융·벤처투자 확대·공급망 금융 등 기업금융과 모험자본 공급에 힘쓰겠다고 했다. 서민·소상공인 지원과 소비자 보호 강화 필요성에도 공감하며 전담 조직 신설, 소액 신용대출, 불법 사금융 예방 협력 확대 등도 약속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 해체라는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주요 현안도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위원장이 어떤 우선순위를 세우고 실행하느냐가 리더십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