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 독점 ‘배관망 정보’ 드디어 열린다…산업부 “투명 공개”

경제

이데일리,

2025년 9월 15일, 오후 07:11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부가 한국가스공사(036460)가 배관망을 독점하며 비공개해왔던 가스 배관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공공 인프라인 가스 배관망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고 공정한 경쟁 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수용한 조치다. 국회는 에너지 전환을 대비하기 위해선 독립적인 가스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거버넌스 체계까지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해, 하반기 입법 논의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 간 진통이 예상된다.

산업부 “배관망 정보 투명 공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스산업 발전을 위한 가스시장 중립감독기구 필요성’ 주제의 토론회(주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재관·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에서 가스 배관망 정보의 투명한 공개 입장에 공감하며 관련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에 나설 입장을 밝혔다.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가스산업과장은 “김성원 의원의 법안에 대해 산업부도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의견”이라며 “다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 안건으로 김 의원의 법안이 논의되면 배관망 정보에 대한 부분은 정부 동의 의견으로 해 도시가스사업법상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김 의원은 “국내 천연가스 도매시장과 배관망은 여전히 가스공사 독점 구조로 이뤄져 있다”며 “특히 배관망의 경우 가스공사가 소유자이자 운영자로서 배관시설의 운영과 이용에 관한 전권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독점을 해소하는 취지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10명(김선교, 구자근, 이종배, 고동진, 임이자, 박충권, 김정재, 박성훈, 이헌승)이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에는 △배관망 정보의 투명 공개 △배관망 신설 확충 및 압력 보강 등 증설에 대한 책임소재 명확화 △재원 마련 방안 등이 담겼다.

‘배관망 정보의 투명 공개’ 관련한 법안 내용은 가스배관 시설이용자인 민간 가스업체가 가스배관 시설을 보유한 가스도매 사업자인 가스공사에 △주간 인입계획량(민간 가스업체가 한 주간 가스공사로부터 공급받으려는 가스의 예상량) △정압 압력(고압의 가스를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저압으로 낮추는 장치인 정압기를 통해 조절된 가스 압력 수준) △배관 정비 계획 △배관망 재고(배관망 내부에 현재 흐르고 있거나 저장돼 있는 가스 양) △그밖에 산업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의 정보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신설 조항이다. 가스공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도 법안에 신설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재관·국민의힘 김성원 의원 주최로 15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가스산업과장과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이 진행됐다. (사진=최훈길 기자)
민간 기업들 “가스공사, 선수로 뛰면서 심판까지”

현재 국내 가스시장은 가스의 도입·저장·운송·도매까지 가스공사의 수직 통합체제가 구축돼 있다. 배관 수송과 도매는 가스공사 중심의 독점 체제다. 다만 LNG 민간 직수입사가 25개사(2024년 기준)로 늘면서 민간이 전체 가스 수입량의 26%까지 맡고 있다. 민간 비중이 이렇게 늘면서 민간 가스 업체들은 “배관망 정보 공개가 공정 경쟁의 신호탄”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들어 민간 가스 업체들은 가스공사가 가스 시장의 ‘선수’로 뛰면서 ‘심판’까지 맡고 있다며 독점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하고 있다. △배관망 접근·정보 공개의 불투명성 △요금 산정의 자의성과 외부 검증 부족 △계약 구조의 불공정성과 책임 비대칭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 제기 중에 산업부가 배관망 문제를 공감해 이번에 배관망 투명성 강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아울러 산업부는 현행 배관시설이용심의위원회(심의위)의 위상도 높여 배관망을 둘러싼 갈등도 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경택 과장은 “배관심의위가 가스공사 자문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다”며 “어떻게 개선할지, 법령 체계상 위상을 높일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의위는 가스 배관시설의 설치·이용·공사 계획 등을 심의하고 기관·업체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신설됐다. 하지만 심의위는 가스공사 내부 규정인 ‘배관시설이용규정’에 근거한 가스공사 산하 심의·자문 기구일뿐이다. 이 때문에 민간과 가스공사 간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제대로 갈등 조정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내 가스시장은 가스의 도입·저장·운송·도매까지 가스공사의 수직 통합체제가 구축돼 있다. 배관 수송과 도매는 가스공사 중심의 독점 체제다. 다만 LNG 민간 직수입사가 25개사(2024년 기준)로 늘면서 민간이 전체 가스 수입량의 26%까지 맡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민간 가스 업체들을 중심으로 “가스공사 독점” 관련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현대경제연구원,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전문가들도 “배관 분리, 가스위원회 설치 필요”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심의·자문 기구인 심의위는 실질적인 갈등 조정 기능에 한계가 있다”며 “최종 결정권이 가스공사 사장에게 있기 때문에 심의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변화 등을 고려하면 독립적인 가스 전문 규제기관을 신설하고 배관망을 분리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력 부문의 전기위원회처럼 민관 위원으로 구성된 ‘가스위원회’를 만들되 요금 결정·법령 심의 및 의결 등의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배관망 분리(unbundling)는 가스공사로부터 배관 부문의 회계·운영·조직을 독립시켜 시장 경쟁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앞서 일본은 2017년 소매 전면 자유화 도입 후 2022년부터 배관 부문 법적 분리를 시행 중이다 .

백 교수는 “민간의 가스 직도입이 수입물량의 26%까지 도달해 시장이 민간에 개방되는 상황에서 반복적인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독립 규제기구를 설립하고 요금결정권 및 법 제정 심의의결 기능 등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스공사의 배관 부문을 분리시켜 모든 시장 참여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고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도 “산자부 입장에서 배관망 정보공개를 하는 게 진일보한 것이지만 거기에 그쳐선 안 된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다양해지고 거래 구조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규제기관인 가스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관 민주당 의원도 “위기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체계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기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정부조직 개편으로 가스와 전기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가스위원회라는 합의제 거버넌스 필요성은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며 “전기위원회가 정부 부처가 결정하기 곤란한 안건을 처리해 갈등과 이견을 해소하듯이 가스위원회가 신설되면 이같은 중재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인천기지본부 등을 통해 해외에서 LNG를 수입해 국내 도시가스 업체 등에 공급 중이다. 가스 배관망 정보가 공개되면 민간 가스 업체들의 시장 진출이 보다 본격화 될 전망이다. 이를 둘러싸고 공기업 한국가스공사와 민간 가스 업체 간 갈등, 가스요금 인상 수준, 가스산업 개편 등이 이슈가 될 전망이다. (사진=한국가스공사)
정부는 신중론…“요금 인상, 산업개편 파장 고려해야”

그러나 가스위원회 설치, 배관 부문 분리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가스 거버넌스 개편은 여러 이해관계가 걸린 큰 현안인데다 민간 시장 개방으로 가스요금 인상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산업부 강 과장은 “거버넌스 개편의 시발점인 배관 부문의 분리는 가스산업 구조 개편에 해당하는 문제이고, (가스위원회로의) 요금 승인 권한의 이관도 국민적 관심이 너무 지대한 사안”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수 한양대 자연환경공학과 교수는 “가스 거버넌스 개편은 시장 개방을 진행한 일본 방식으로 가자는 것인데 일본도 안정적 운영에 난항을 겪었다”며 “단기간에 추진하기보다는 일본의 시행착오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식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독립규제기관 신설은 최종적으로 지향할 방향이나 법령 개정, 조직 개편, 전력인력 확보 등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와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미래산업팀 연구위원은 “방향은 맞으나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나 가스공사노조에서도 공개 발언을 통해 신중한 논의를 주문했다. 구조적 변화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만큼, 속도 조절과 사회적 합의 과정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선화 한국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융합에너지팀장은 “그동안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쌓이고 재무 상황이 악화한 것은 국민들의 도시가스 요금 부담이 없도록 가스공사와 산업부가 감내하기로 했기 때문”이라며 “가스산업 거버넌스 개편과 독립 기구 신설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 상황에서 급하게 추진할 경우 국민들이 받는 (요금) 영향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종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대외협력국장은 “발의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에 가스 관련 민간 협회의 연구용역 항목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며 “국민을 위한 입법이 돼야 하는데 특정 협회의 연구내용이 그대로 반영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