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성장 체제에서 인플레이션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면 경제 불안 심리가 가계와 기업 곳곳으로 퍼진다. 물가를 외면하고 성장률 높이기에 집착하다가는 돌이키기 어려운 초인플레이션 충격에 시달릴 수 있다. 물가 불안이 심하면 심할수록 정책과제로 선정된 ‘기본소득’ 또한 기대효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자칫 숫자놀음에 그칠 우려가 있다. 먼 시각으로 잠재성장률부터 확충하려는 노력을 차근차근 추진해야 조금씩이라도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 성장 우선 정책으로 성장피로감에 젖다 보니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초반 5%에서 줄곧 하향 곡선을 그려 왔다.
한국경제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까닭은 선진 기술 추격 단계를 지나 선도 경제에 진입하면서 기술 혁신의 한계로 생산성이 주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제성장률에 방점을 두고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정책 의지를 자주 내비치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가세해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초인플레이션 압력을 하찮게 여기다 보면 성장 기대효과가 사그라드는 포퓰리즘 악령에 시달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 활력이 저하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교육제도 부실, 기업가정신 위축, 불로소득이 능률을 저하해 기초 체력을 흔드는 중대한 원인으로 판단된다.
먼저, 교육이 어린이·청소년의 창의력을 발굴해 변화의 대응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보다는 암기를 통해 찍기 기술을 가르치니 중장기로 사회적 적응능력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학생들에게 협력을 통한 경쟁력을 배양하기보다 시기와 경쟁심을 부추기니 어른이 돼서도 마음에 흔적이 남아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닐까.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구성원 간에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적응하기보다 혼자 이기려다가 시간만 허비한다. 최고가 되려고 다투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변화의 방향을 함께 읽고 협력하는 인성을 북돋아야 나라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그다음으로 한 나라의 경제 성장 동력은 무엇보다 기업가정신에서 배양된다. 기업가들은 인류 발전에 필요한 상품을 남보다 더 빨리, 더 좋게, 더 싸게 공급하려고 경쟁하면서 부가가치 증진에 이바지한다. 남다른 기업가정신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창의력과 함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능력을 길러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상호의존관계가 깊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기업가정신이 활발해질수록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돼 근로자들의 대우가 향상하고 노사관계도 원만해져 품격 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불로소득은 누군가가 땀 흘려 이룩한 부가가치를 대가 없이 차지하는 부당 행위로 경제 활력을 갉아먹어 성장잠재력을 시나브로 마모시킨다. 낙하산 인사는 불로소득과 함께 조직을 멍들게 한다. 춘추전국시대 관중(管仲)은 “군자는 홀대하더라도 큰 원한을 사지 않으므로 피해가 없지만 소인에게 중책을 맡겨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게 하면 세상사를 그르친다”고 했다. 무책임한 자가 큰일을 맡으면 잘못을 인지할 자세도 없고 잘못을 고칠 역량이 없어 마구잡이로 밀어붙인다. 조그만 성공은 자신의 공으로, 큰 실패는 남의 탓으로 돌리면 조직이나 사회의 위기 대응능력은 취약해진다.
저성장·고물가 시대 한국경제 최우선 과제는 물가안정을 통한 성장잠재력 확충이다.